‘GST-9 권총 80% 키트 799.99달러. 쉬운 조립. 설명서 제공.’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이런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총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완제품 총을 사려면 절차가 까다롭지만 부품이나 완성률 80% 이하의 키트는 총기로 간주하지 않아 구입에 제한이 없기 때문. 부품이나 키트를 사서 조립만 하면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는 ‘고스트 건(ghost gun·유령 총)’이 되기 때문에 미 정부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DIY 총’이라고도 불리는 고스트 건은 1990년대에 등장했지만 이른바 밀덕(밀리터리 덕후)들의 취미 정도로 여겨졌다. 고스트 건에 대해 경고등이 켜진 건 2013년이었다. 범인을 포함해 6명이 목숨을 잃은 샌타모니카대 총기 사건에 고스트 건이 사용된 것. 이후 2019년 캘리포니아에서 16세 고교생이 같은 학교 학생 2명을 살해한 사건 등 고스트 건을 이용한 총기 사고가 잇따랐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2016∼2020년 당국에 적발된 고스트 건은 2만3000정이 넘고, 고스트 건을 이용한 살인·살인미수 사건은 325건이나 된다.
▷총기 보유를 적극 옹호했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총기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 핵심은 위험인물이 총기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붉은 깃발(red flag)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스트 건은 구매자에 대한 배경조사(background check)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주인이 위험인물인지 파악할 수조차 없다. 이에 미 정부는 총기 부품을 사기 전에 배경조사를 받게 하는 등 고스트 건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먼저 준비하고 있다.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고스트 건이 한국에도 처음 상륙했다. 자동차나 장난감 총의 부품이라고 속여서 해외에서 부품을 들여온 뒤 조립한 것인데, 이런 방식으로 총을 만들면 적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치안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파괴력도 강해 인명을 해칠 수 있다. 고스트 건이 범죄조직이나 흉악범의 손에 들어가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도심 밤거리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한국은 세계적으로 치안이 안정된 나라로 꼽혀 외국인들이 부러워한다. 여기에는 총기를 금지한 것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런데 고스트 건을 막지 못한다면 한국은 ‘총기 청정국’이라는 명성을 잃게 되고 치안에는 큰 구멍이 뚫린다. 3D프린터로 총기를 만드는 기술도 이미 인터넷상에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총기 확산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력을 기울여 막지 않는다면 영화에서나 보던 도심 총격전이 한국에서도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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