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지금, 야구장-공연장-음식점 등 다중이용시설 ‘접종자 특별대접’]
뉴욕 주민 절반가량 접종 완료… 야구장에 접종자 전용구역 마련
“모처럼 마스크 벗고 함께 응원”… 공연장-음식점은 비접종자 제한
“백신 접종자 전용구역으로 갈분은 접종 증명서와 신분증을 보여주세요.”
2일(현지 시간) 저녁 미국 뉴욕에 있는 양키스타디움.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 홈구장인 이곳에서는 경기 시작을 앞두고 구장 직원들이 관중 입장을 안내하고 있었다. 양키스타디움은 약 2주 전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만 앉을 수 있는 전용구역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일반석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해 입장 인원이 크게 제한돼 있지만, 관중이 붙어 앉을 수 있는 전용구역은 판매되는 티켓이 많아 백신만 맞으면 원하는 좌석을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다. 또 백신을 맞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앉기 때문에 감염 위험으로부터도 더 안전하다.
모더나 백신을 2회 맞고 2주 이상 지난 기자도 이날 전용구역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섰다. 스마트폰에서 내려받은 디지털 접종 증명서를 제시하자 직원이 이를 신분증과 대조했다. 그리고 발열 체크까지 한 뒤 경기장에 들어섰다. 기자가 도착한 전용구역은 코로나 사태 이전처럼 수백 명의 관중이 나란히 붙어 앉아 경기를 보고 있었다. 반면 전용구역 바로 옆의 일반석은 일부 좌석을 빼면 사람들이 앉을 수 없도록 테이프가 둘러져 있어 사실상 비어 있다시피 했다.
전용구역에서 기자의 옆자리에 앉은 백인 남성 마이클 보일런 씨는 “모두가 다 백신을 맞았고 게다가 야외 공간”이라며 “서로 가까이 붙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야구를 볼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전용구역에 있던 다른 여성 관중도 “마스크를 벗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어 오랜만에 응원하는 맛이 나는 것 같다”고 했다. 기자가 있던 전용구역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양키스 구단 공지에 따르면 전용구역 관중은 매점이나 화장실 등에 갈 때를 빼고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최근 뉴욕에서는 야구장, 공연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다중복합시설 운영자 측이 백신 접종자를 우대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내 여론조사에서는 경기장 입장 시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美 “접종자부터 일상 회복”… 국민 절반 이상 ‘우대 정책’ 옹호
뉴욕, 디지털 접종 증명서 발급… 경기장-공연장서 제시땐 통과 엄격한 입장제한에도 관객 꽉차… 비접종자 ‘차별-불이익’ 우려에도 ‘맞으면 혜택’ 접종 유도 목적도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46.1%)가 백신 접종을 완료한 뉴욕주는 백신 여권 도입에서 다른 주보다 앞서가고 있다. 주 당국은 이미 올 3월부터 디지털 백신 접종 증명서인 ‘엑셀시오 패스(Excelsior Pass)’를 시민에게 발급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신의 개인정보와 백신 접종일자 등을 입력하면 패스가 나온다. 벌써 110만 명 이상이 이 앱을 내려받았다. 양키스타디움에서 백신 접종 사실을 증명할 때도 스마트폰을 들어 이 패스를 보여주기만 하면 됐다. 백신을 맞은 접종소에서 발급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로고가 찍힌 종이 증명서를 평소 휴대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뉴욕에서 백신 접종 증명이 중요한 이유는 백신을 맞은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는 곳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명소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올여름 열릴 예정인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야외 공연이 대표적이다. 공연 주최 측은 백신 접종 완료자나 입장 시점 기준 72시간 내에 음성 확인서를 받은 사람만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다고 공지했다. 다만 16세 이하 어린이 관객은 백신을 맞은 성인 보호자와 함께라면 입장이 가능하다.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한 뒤 손님을 골라 받는 사례는 뉴욕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맨해튼 어퍼이스트에 있는 전시공간 ‘파크 애비뉴 아머리’에서도 댄스공연 입장 관객에게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존 멀레이니의 공연 역시 백신 접종을 마치고 14일이 지나야 입장이 허락된다. 이 같은 입장 제한에도 각 행사장은 그동안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이 쌓였던 관객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얼마 전 ‘코미디 셀러’라는 맨해튼의 코미디쇼 공연장은 백신 접종자나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한테만 티켓을 팔았는데도 수요가 많아 특별공연을 추가로 계획했다. 브라이언트 파크의 오케스트라 공연 역시 이달 예정된 나흘간의 공연 티켓이 다 팔렸다. 이달 중 맨해튼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리는 트라이베카 영화제도 백신 접종자들로만 관객이 꽉 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미국은 이 같은 ‘접종자 우대’에 대한 여론도 우호적인 편이다.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57%의 미국인들은 스포츠 경기장에 입장할 때 백신 접종 증명서 제시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국내선 비행기(63%)는 물론이고 미용실이나 식당(이상 49%)의 경우에도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이 백신 접종자들만 입장을 허용해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 접종 증명을 너무 엄격히 요구하다 보면 비접종자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접종자와 비접종자는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은 집단면역을 달성하기 전에 백신을 맞은 사람들만이라도 먼저 일상의 정상화를 누려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의 접종을 이끌어내려는 목적도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지난달 백신 접종자에 대한 실내 마스크 착용 규제 완화를 발표하면서 “변화의 핵심은 ‘백신을 맞으면 그에 따른 혜택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이런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 증명에 대한 거부감, 허술한 보안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 애리조나 플로리다 텍사스 등 일부 주에서는 최근 오히려 백신 여권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백신 미접종자를 차별하면 이들에게 접종을 강요하는 것이 되고, 결국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백신 여권이나 증명서를 통해 접종자를 100% 가려내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CDC의 종이 증명서나 디지털 패스 모두 위조나 명의 도용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일 양키스타디움의 백신 접종자 전용 구역에서 만난 한 관중도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다 백신을 맞았는지 어떻게 알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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