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구글 애플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법인세를 적게 걷는 나라에 본사를 두는 식으로 세금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주요국들이 다국적 기업에 세금을 매길 때 본사 소재지뿐 아니라 매출이 발생하는 곳에서도 과세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아직 과세 대상 기업의 구체적인 범위는 나오지 않았지만 애플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을 비롯해 한국의 성장기업들도 일부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각국의 법인세율 하한선을 15%로 정하자는 데도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은 4, 5일 영국 런던에서 회담을 갖고 이런 내용에 합의했다. 의장국 영국의 리시 수낵 재무장관은 “수년간 논의 끝에 G7 재무장관들이 글로벌 조세 시스템 개혁을 위한 역사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합의에 따르면 미국의 대형 테크기업들에 대한 일부 과세 권한이 유럽 국가에도 주어진다. 재무장관들은 ‘가장 크고 수익성이 높은 다국적 기업들’로부터 이익률 10% 초과분 중 최소 20%를 해당 매출이 발생한 나라에서 과세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공동선언문에는 대상 기업의 이름이나 구체적인 기준이 명확하게 담기진 않았지만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국의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또 이익률이 10%를 넘는 한국 기업들도 일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유력하게 논의돼 왔던 ‘글로벌 연매출 1조 원’ 기준은 이번 합의안에 명시되지 않았다. 과세 대상이 IT 기업 이외로 확대되고 연매출 기준이 1조 원 선으로 정해지면 영업이익률이 10%를 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넥슨 등 게임회사도 과세 대상에 들게 된다.
G7은 각국의 법인세율을 15% 아래로 낮추지 못하게 하자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각국의 세수 기반을 늘리고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끝내자는 취지다. 이런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은 팬데믹으로 상당한 재정 타격을 입은 미국과 유럽이 각자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해 주고받기를 한 결과로 풀이된다. 우선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유럽에서 많은 수익을 내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 점에 오래전부터 문제를 제기해 왔다. 미국은 이에 미온적으로 반응해 왔고, 급기야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자국의 기업에 과세하려는 데 맞서 유럽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놔 갈등이 고조됐었다.
미국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한 직후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올해 초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디지털세 과세 대상에 아마존 애플 등 자국 기업들을 포함시키자는 유럽의 주장에 사실상 동의했다. 그 대신 미국은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냈다. 바이든 행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출 계획과 이를 위한 법인세 인상 방침을 뒷받침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법인세 하한선이 정해지면 세금을 덜 내기 위해 해외로 이전하는 미국 기업들의 실질적인 혜택이 줄어들게 되고 그만큼 법인세 인상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번 합의는 수십 년간 굳어져 왔던 글로벌 조세 체계를 바꿨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 반대하는 나라를 설득해야 하는 등의 과제가 남아 있다. 아일랜드 등 법인세율 15% 미만 국가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5%, 최저는 17% 수준으로 G7이 합의한 15%보다 높아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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