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간 ‘망치…’ 손봐 재출간
중2때 톨스토이 소설로 책에 빠져
1960년대 美하버드대 연구교수땐 ‘벽돌책’ 몇권씩 읽는 문화에 놀라
“청년들, 독서로 나만의 생각 쌓아야”
“30여 년 전 교수님 말씀이 옳았습니다. 젊은 시절 일에 쫓겨 독서를 게을리했는데 임원이 되고 보니 ‘정신적 빈곤’이 몰려오네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101)는 최근 만난 삼성그룹 임원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김 명예교수가 1980년대 후반 삼성 신입사원 연수에 강연자로 초빙됐을 때 “학교 공부만 하고 책을 안 읽으면 자신만의 사상을 쌓지 못한다. 과장까지는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지만 부장 이상으로 승진해 결정을 내리는 직책을 맡으면 그땐 다르다”고 말했다는 것. 김 명예교수에 따르면 당시 강의를 들은 약 130명의 신입사원 중 자신에게 의미 있는 고전 5권을 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회사의 방향을 올바르게 이끄는 리더가 되려면 자신만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은 독서”라고 강조했다.
그가 약 90년에 이르는 자신의 독서 경험을 담은 에세이 ‘백년의 독서’(비전과리더십·사진)를 최근 펴냈다. 1995년 출간 후 절판된 ‘망치 들고 철학하는 사람들’(범우사)을 손봐 재출간했다. 16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김 명예교수는 “출판사의 재출간 요청을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결국 수락했다”며 “초기 반응이 좋은 걸 보면 아직 책 읽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책은 출간 20일 만에 초판 3000권이 모두 판매됐다.
그가 책에 처음 빠진 때는 중학교 2학년. 학교 도서관에서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를 우연히 보고 꼭 읽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여서 전쟁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를 회고하면서 해맑게 웃었다. “철없던 시절이라 그 책이 소설인지도 몰랐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책이 됐어요. 톨스토이가 말한 휴머니즘은 나를 철학의 길로 안내했죠. 고전은 한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그는 1960년대 미국 하버드대 연구교수로 있을 때 미국의 독서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 미국 학생들은 한 강의를 들을 때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최소 3권씩 읽었다. 오전 5시까지 책을 읽다가 잠드는 학생들을 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다는 것. 그는 “학교 공부 못지않게 독서가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성장시킨다는 걸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며 “젊은이들이 인터넷이나 TV보다 책 읽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문학고전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의 전기와 자서전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객관적 정보를 얻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간결한 문장과 깊이 있는 통찰이 담긴 필력으로 유명하다. 에세이 ‘백년을 살아보니’(덴스토리)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쓰고 여전히 현역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글쓰기 비결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예상대로 독서였다. “사람들이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더군요. 좋은 글을 많이 읽으면 자연히 쓰고 싶어지고, 또 잘 써집니다. 독서가 10년 정도 쌓이면 인생이 달라지니까 책을 꼭 읽으세요. 그럼 언젠가 저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쓰게 될 겁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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