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평등이 무질서-불공정으로 바뀐 아테네 민주정”[조대호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페리클레스의 연설 모습을 담은 독일 화가 필리프 폰 폴츠의 1842년 작 ‘페리클레스의 장례연설’.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431년 전몰자들을 위한 연설에서 아테네의 민주정을 찬양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페리클레스의 연설 모습을 담은 독일 화가 필리프 폰 폴츠의 1842년 작 ‘페리클레스의 장례연설’.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431년 전몰자들을 위한 연설에서 아테네의 민주정을 찬양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민주정치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431년에 행한 연설에서 민주정을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손에서 운영되는 정체”라고 부르면서 자유와 평등을 이 정체의 기본가치로 내세웠다. “우리는 사생활에서 관대함을 갖고 교류하며 공적인 일에서 두려움을 갖고 법을 지킵니다.” 하지만 이 연설이 있고 불과 두 세대도 지나지 않아서 집필한 ‘국가’에서 플라톤은 민주정치를 맹렬히 비판한다. 무엇보다 페리클레스가 찬양한 자유와 평등이 이 정치체제의 썩은 뿌리였다. 왜 플라톤은 민주정치에 그렇게 분노했을까.》

아테네 민주정에 대한 비판이 담긴 플라톤의 저서 ‘국가’ 일부가 기록된 파피루스 조각.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아테네 민주정에 대한 비판이 담긴 플라톤의 저서 ‘국가’ 일부가 기록된 파피루스 조각.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스인들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 그들에게 ‘자유’는 본래 외세의 지배나 독재자의 압제에서 벗어난 상태를 가리키는 정치적 가치였다. 그것은 타자의 강제와 간섭에 구속되지 않는 자기 결정의 자유, 즉 ‘자율(autonomy)’을 뜻했다. 물론 이런 뜻의 자유는 ‘평등(equality)’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타자와 동등한 관계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한 자율로서의 자유는 빈껍데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와 평등은 오랜 역사의 마라톤 경주에서 그리스인들이 따낸 황금 메달의 양면과 같았다.

획일적 평등 경계한 플라톤

플라톤이 경험한 민주정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그의 시대에 이르러 민주정의 두 가지 가치는 ‘무질서’와 ‘불공정’의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에게 자유는 더 이상 자율이 아니라 모든 지배와 구속의 부재를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희석하지 않은 자유의 포도주”에 흠뻑 취한 사람들은 외세나 권력의 부당한 지배뿐만 아니라 관습과 법의 지배까지 구속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자율로서의 자유가 ‘모든 지배의 부재’를 뜻하는 아나르키아(anarchia·무정부 상태)로 뒤바뀐 것이다. 본래 법 앞에서의 동등함을 지향하는 평등의 이념도 일그러졌다. 플라톤은 “똑같은 것을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정체”의 평등을 비판했다. 평등의 추구가 오히려 불평등을 낳는다는 말이다.

플라톤의 비판은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 민주정에서는 데모스의 시민(18세 이상의 남자)이면 누구나 추첨을 통해 거의 모든 공직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등에 대한 플라톤의 발언은 평등의 추구에 뒤따르는 반전(反轉)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똑같은 사람들에게 똑같지 않은 권리를 부여하는 사회나 똑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사회나 불공정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떤 측면에서’ 모든 구성원에게 똑같은 권리를 부여하고, 또 어떤 점에서 각 구성원의 역량과 기여를 존중하면서 권리에 차이를 두어야 할지를 따져 실행하는 세심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두 가지 평등의 원칙, 즉 산술적 평등과 비례적 평등의 원칙 가운데 어느 하나가 없으면 사회의 공정성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도둑 떼도 버티지 못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물건을 훔친 자와 뒷전에서 놀던 자에게 똑같은 것을 나눠주는 것이 평등이고 공정함일까? 플라톤이 보기에 민주정의 아테네는 비례적 평등을 무시한 채 산술적 평등만을 앞세우는 불공정한 사회였다.

탐욕에 병든 아테네 민주정

오랜 역사의 고난을 거쳐 얻은 민주정의 가치들이 이렇게 훼손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황금기를 누린 그리스가 내전과 혼란에 휩쓸린 이유를 탐욕에서 찾았다. 병든 민주정에 대한 플라톤의 진단도 같다. “부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돈벌이 이외의 다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 민주정의 불치병이었다. 고난의 기억을 잊고 자유의 포도주에 만취한 채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같은 욕망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삶, 이것이 플라톤이 겪은 민주정의 현실이었다. 돈에 대한 욕망과 그 밖의 것들에 대한 무관심은 그런 욕망 사회의 종착점이었다. 이런 사회가 어떻게 같아야 할 것과 달라야 할 것을 구별할 수 있을까.

플라톤의 ‘국가’는 만족할 줄 모르는 맹목적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와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그렸다. “그는 변덕스러운 욕구에 영합하면서 나날을 보내는데, 어떤 때는 술에 취해 악기 소리를 듣다가 다시 물만 마시고 살을 빼며, 어떤 때는 다시 신체 단련을 하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게으름을 피우며 만사에 무관심해지고, 어떤 때는 철학에 몰두하기도 하지. 또 자주 정치에 관심을 보이면서 벌떡 일어나서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네.” 부모와 자식의 다름, 선생과 학생의 다름이 “자유를 위해서” 무시된다. 아비가 자식과 같아지고 아들들을 두려워하며 아들은 아비와 같아지고 부모 앞에서 부끄러움을 모른다. “선생이 학생들을 무서워해서 이들한테 아첨하고, 학생들은 선생들을 우습게 본다.” 젊은이들은 연장자들을 흉내 내며 이들과 맞상대하고, 노인들은 젊은이들 앞에서 채신없이 굴면서 기지와 재치를 발휘한다. “불쾌하고 권위적이라는 평판을 피하기 위해서”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흉내 낸다. 이런 사회에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대중의 호의를 사면 누구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아무나 정치’에서는 정치적 권위가 서지 않기 때문이다. “통치자들에게 순응하는 사람들을 노예근성에 젖어 있으며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라고 모욕하는 한편, 피통치자들 같은 통치자들과 통치자들 같은 피통치자들을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칭찬하며 존중한다.”

민주정치 건강 체크하는 문진

이렇듯 막 나가는 사회를 바꿀 방법이 있을까. 플라톤은 한 가지 대안을 찾았다. 이성이 욕망을 지배하는 정치가 그의 대안이었다. 그에게는 개인에게서나 국가에서나 원칙을 지키고 앞날을 숙고하는 지혜를 갖춘 이성이 맹목적 욕망을 지배하는 것이 곧 건강한 상태에 이르는 길이었고, 그런 맥락에서 그는 지혜로운 자가 통치하는 철인정치를 옹호했다. 물론 플라톤의 대안은 논리적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다. 당장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문을 제기했고, 20세기에는 더 혹독한 비판이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철인정치론은 전체주의 옹호론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플라톤의 분노와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처방이 잘못이라도 진단은 옳을 수 있다. 철인정치론의 정당성 문제를 제쳐두고 플라톤의 민주정 비판에 주목해 보자. 거기서 우리는 민주정치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문진표를 얻을 수 있다. 문진표는 이런 질문들로 시작된다. 1. 당신들의 사회는 “부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돈벌이 이외의 다른 것들에 대한 무관심”에 의해 지배되지 않나? 2. 당신들의 사회는 “자유를 위해서” 모든 차이를 무시하지 않나? 3. 당신들은 “불쾌하고 권위적이라는 평판을 피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지 않나? 2500년 전의 플라톤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플라톤 시대 사용된 그리스 주화. 앞면에는 수호 여신 아테네의 모습이, 뒷면에는 아테네 여신을 상징하는 올빼미와 올리브가 새겨져 있다.
플라톤 시대 사용된 그리스 주화. 앞면에는 수호 여신 아테네의 모습이, 뒷면에는 아테네 여신을 상징하는 올빼미와 올리브가 새겨져 있다.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그리스#민주정치#자유#평등#썩은 뿌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