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공정도, 경제도 놓친 35조 K추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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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2만 명에게 11조 현금 뿌리기
‘헬리콥터 K추경’, 누굴 위한 건가

박용 경제부장
박용 경제부장
4472만 명에게 25만 원씩 나눠주기로 한 5차 재난지원금(국민지원금)의 발화점은 문재인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2월 간담회였다. 대통령은 이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 위로 지원금, 국민 사기 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다섯 달 뒤인 23일 국회는 국민지원금이 포함된 34조9000억 원의 역대 최대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통과시켰다. 한쪽에선 ‘4차 대유행’을 잡기 위해 방역을 강화해놓고 다른 쪽에선 소비 진작에 방점이 찍힌 국민지원금을 뿌리겠다는 거다. 코로나19 진정을 전제로 국민지원금을 거론한 대통령의 2월 발언과도 거리가 멀다.

이번 추경은 묘하다.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후하고 피해자들에겐 상대적으로 박하다. 국민 88%에게 국민지원금을 나눠주는 데 11조 원, 거리 두기 격상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 178만 명에겐 절반도 안 되는 5조3000억 원을 배정했다. 피해 유무와 상관없이 뿌리는 ‘상생 국민지원금’은 받으면 좋고 못 받으면 억울한 ‘공돈’으로 변질됐다. 공정성 논란을 자초했다.

11조 원은 그렇게 뿌릴 돈이 아니다. 한 해 국방비(52조8000억 원)의 약 5분의 1이며 백신도 접종하지 못하고 파병을 나간 청해부대가 소속된 해군과 공군의 1년 예산을 모두 합한 금액(10조6300억 원)보다도 많다. 이 돈을 보태면 대학들의 연구개발비(2019년 기준 5조278억 원)를 세 배로 늘려 세계 일류 대학과 경쟁시킬 수 있고, 지난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30만 명에게 준 생계급여(5조5962억 원)를 올해 세 배로 늘려줄 수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등으로 직장을 잃은 실업자 170만3000명에게 준 구직급여(11조8556억 원)를 감당할 수 있는 큰돈이다.

그런 목돈을 4472만 명에게 뿌리면 푼돈처럼 효과가 줄어든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 국민에게 나눠준 1차 재난지원금은 사용 가능 업종에서 전체 투입예산 대비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를 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원래 쓰려던 돈은 저축이나 투자를 하고 정부 돈을 쓰다 보니 소비 효과가 제한적이다. 현금 뿌리기보다 피해를 본 자영업자를 선별해 직접 지원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다는 뜻이다.

방역에 동참한 자영업자들은 빚을 내 근근이 버티고 있다. 3월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은 832조 원으로, 1년 전보다 132조 원(18.8%) 불었다. 연내 금리 인상도 예상된다. 당장은 정부 조치로 대출 원리금 상환이 연기됐지만,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다. 밀린 청구서들이 날아오는 코로나19 이후가 더 두렵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간사가 얼마 전 내년도 최저임금을 5.1% 인상한 것과 관련해 “코로나19가 끝난 후의 ‘정상 상태’를 가정해 결정했다”고 말했을 때 자영업자들은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4.6%로 독일(9.6%), 미국(6.1%)은 물론이고 일본(10.0%)보다 훨씬 높다.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건 한국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국민 4472만 명에게 뿌릴 국민지원금 11조 원을 보태서 피해를 본 178만 명의 소상공인에게 나눠준다면 현재(1인당 평균 297만 원)의 약 3배인 평균 915만 원을 줄 수도 있다. 거리 두기 단계를 격상하더라도 덜 미안하고, 그들이 밀린 빚을 갚고 재기하게 거들 수 있다. 그런데도 선거에 정신이 팔린 정치권과 피해자를 선별할 능력이 모자란 정부가 현금 뿌리는 ‘헬리콥터 추경’을 반복하며 아까운 재원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5차 재난지원금#11조 현금 뿌리기#공정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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