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하반기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 없이 예정대로 진행할지 고심하고 있다. 당초 훈련 규모를 축소하되 계획에 맞춰 실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북한이 1일 남북 통신선 복원의 반대급부로 훈련 중단을 요구하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 청와대 일각에서는 훈련을 진행할 경우 남북 대화 재개의 모멘텀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훈련을 연기할 경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훈련 중단 압박에 굴복했다는 ‘김여정 하명’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실시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예정대로 훈련을 실시하자는 입장인 미국은 “훈련 여부는 한미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 靑 “입장 없다” 軍은 “연기 쉽지 않을 것”
청와대 관계자는 2일 “(김여정 담화 의도를) 확인하며 지켜보고 있다”면서 “지금 단계에선 아직 (훈련 연기와 관련해) 어떤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청와대는 주말까진 훈련을 하자는 기류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에서 훈련 연기 주장이 제기됐지만 한미 동맹 간 협의하에 실시하는 훈련인 만큼 갑자기 미루는 것에 청와대가 부담을 느낀 것. 미국이 한미 연합대비태세 점검을 위해 규모를 축소하더라도 훈련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인 점도 고려했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전날 저녁 담화에서 훈련 중단을 남북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요구하면서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정은은 식량이나 코로나19 백신 지원 등에는 아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현재로선 우리가 북한을 테이블로 한 발짝 더 끌어낼 카드가 마땅치 않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북한이 연합훈련을 대놓고 언급한 건 다음 카드로 훈련 중단 말고는 안 받겠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했다. 청와대는 훈련 관련 결정에 따른 부담이 작지 않은 만큼 며칠 더 보고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외교안보 부처는 김여정 담화에 엇박자를 내고 있다. 통일부는 김여정 담화 하루 만인 이날 “어떤 경우에도 한미 연합훈련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며 훈련 연기를 재차 주장했다.
반면 국방부는 이날 “하반기 연합훈련의 시기와 규모, 방식 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냈지만 군 내부적으론 한미 당국이 잠정 합의한 대로 훈련이 진행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미 장병들은 훈련 기간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진행될 벙커인 B-1 문서고, CP 탱고에서 통신 점검 등 훈련 준비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연합훈련의 성격 자체가 방어적이고 연례적인 훈련인 데다 미군은 연합방위태세 유지를 위해 훈련 실시가 필수적이라 보고 있어 연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 美 “훈련 여부는 한미가 결정할 일”
여권 일각에서도 훈련 연기 요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본격적인 대화 복원을 위해 한미 공조를 통한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훈련 연기를 주장했다. 앞서 설 의원이 속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 국회의원 76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훈련 연기를 한미 당국에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며 연기론을 일축했다. 송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훈련은 김여정 부부장이 말한 적대적 훈련이 아니라 평화 유지를 위한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자, 전시작전권 회수를 위해 완전한 운용능력(FOC) 검증에 있어 필수적 훈련”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1일(현지 시간) 김여정 담화와 관련해 “연합훈련은 한미 양자의 결정”이라고 답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지금 상황에서 훈련 연기를 달가워하진 않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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