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美 백인 ‘소수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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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색인종의 백신 접종률이 저조한 이유는 의료 체계에 대한 오랜 불신 탓이다. 20세기 초반 유색인종을 대상으로 약물 효능 실험에 강제 불임 시술까지 비밀리에 시행한 사실이 알려진 것. 불임 시술의 흑역사는 출산율이 높은 유색인종들에 밀려 백인이 멸종할지 모른다는 극단적 피해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백인들의 불안감을 더 자극할지도 모를 인구조사 결과가 곧 발표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2일(현지 시간) 공개되는 2020 인구조사에서 백인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해 그 비율이 60%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히스패닉은 20%, 흑인은 12.5%, 아시아계 비율은 6%다. 18세 미만에서는 백인이 절반이 안 된다. 2045년에는 백인이 전체 인구의 절반 미만으로 쪼그라들어 주류 인종의 지위를 잃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백인이 소수화하는 이유는 이민 인구가 늘어난 데다 유색인종의 출산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2019년 미국의 인종별 출산율은 히스패닉이 1.94로 가장 높고 이어 흑인(1.77) 원주민(1.611) 백인(1.610) 아시아계(1.51) 순이다. 사회의 주류였던 백인 베이비 부머가 은퇴하면서 미국은 노인 복지 예산과 유색인종을 위한 영어교육비 중 어느 쪽을 늘려야 하는지 저울질하고 있다. 흑인들이 자유를 찾아 북쪽으로 대거 이동했던 20세기와 달리 최근엔 유색인종들이 일자리를 찾아 남하하면서 정치 지형도 바꿔놓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의 텃밭이었던 애리조나주에서 승리한 요인 중 하나는 이 지역의 유색인종 유입이었다.

▷백인 사회엔 유색인종이 소수자로서 우대혜택을 받더니 이젠 주류가 돼 미국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 같은 피해의식은 ‘피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비백인(one-drop rule)’으로 분류했던 과거의 경직된 이분법에 근거한 주장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인종적 결합이 활발한 지금은 백인과 비백인을 가르는 경계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백인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40%는 혼혈이다. 아시아계 10명 중 3명, 히스패닉 4명 중 1명, 흑인 5명 중 1명이 다른 인종과 결혼하는데 이 중 4분의 3이 백인과 한다. 이런 가정의 아이들은 백인과 같은 혜택을 받으며 주류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난다.

▷미국의 인종 구성 변화는 백인의 소수화일까, 인종적 결합의 확대일까. 백인의 불안감을 악용해 인종적 갈라치기를 시도하는 포퓰리즘 정치에 굴복하느냐, 인종적 결합의 힘을 믿고 통합의 길을 가느냐에 다인종국가 미국의 성패가 달려 있을 것이다.

#미국#백인#소수화#유색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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