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이 여름마다 어지러워했던 이유[이상곤의 실록한의학]<112>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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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12세에 왕위에 오른 조선 13대 왕 명종은 여름만 되면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재위 16년에는 경연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나는 약질인 데다 감기에 잘 걸리고 간간이 설사까지 해 항상 기운이 나른하다. 간혹 열이 치받치면 현기증이 일어난다. 학문이 중하기는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으니 어떻게 경연을 할 수 있겠는가.” 명종의 어지럼증 기록은 재위 18년에도 나타난다. “오늘 낮 늦게부터 온몸이 한기로 떨리고 수족이 차다가 덥다가 하며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니 무슨 약으로 다스려야겠는가?”

심열증(心熱症)이 그 원인이었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부 장기를 뜨겁게 달궈 병을 유발한 것. 그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가한 장본인은 외아들 순회세자와 어머니 문정왕후였다. 특히 순회세자는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돼 피우(避寓·거처를 옮김)할 만큼 체질이 약했다. 명종이 “사세(辭世·죽음)가 부득이하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 위중함을 짐작할 수 있다. 순회세자는 명종 18년에 1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 문정왕후는 명종의 건강을 해치는 폭탄 같은 존재였다. 실록은 문정왕후가 아들인 명종에게 ‘내가 아니면 어떻게 이 자리를 소유할 수 있었으랴’라며 호통하기도 했으며 이에 명종이 “눈물을 흘리었고 목 놓아 울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명종은 늘 어머니 때문에 심기가 편안하지 않고 비위(脾胃)가 불편해 어지러움과 불면증을 호소했다 한다. 머리와 심장으로 열이 몰리고, 신장은 차갑게 식어가는 상열하한증(上熱下寒症)으로, 한의학은 심열증을 이 증상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음양오행론에서 심장은 우리 몸의 엔진으로서 불꽃같은 힘, 화(火)를 상징한다. 반면 신장은 뜨거운 열을 배출해서 몸을 식히며 차가운 물(水)을 상징한다. 불은 위를 향하고 물은 아래로 흐른다. 그래서 상열하한증을 치료하려면 마음을 다스려 심장의 열기를 하부로 내리고 신장에 저장된 차가운 물을 데워 상승하게 하는 수승화강(水升火降)의 방식이 필요하다. 이때 불이 내려가고 물이 올라가는 통로인 소화기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여름날 심열로 인한 갈증을 없애기 위해 먹은 찬 음식은 수시로 배탈을 유발해 오랫동안 소화기 장애를 일으켰다.

어지럼증은 여름철에 특히 심해진다. 날씨가 더워지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혈관이 확장되고 땀을 통해 수분과 전해질이 많이 배출되면서 체액량이 줄어 혈압이 낮아진다. 심장은 양수기처럼 혈액을 퍼 올려야 하는데 혈압이 떨어지면 신체 중 가장 위에 있는 머리, 뇌로 가는 혈액량이 감소해 두통, 피로감, 무기력증, 이명, 소화불량, 구역감 등 증상이 나타난다.

동의보감은 “찬 과일이나 찬 음료를 여름에 오히려 절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화력은 삭히고 찌는 열기를 바탕으로 하는데 찬 음식은 위장의 온기를 없애 설사를 일으키거나 복통을 유발한다. 심장과 신장 사이의 수승화강 흐름을 방해한다. 복날 뜨거운 삼계탕을 먹는 ‘이열치열’의 여름나기 관습이 생긴 것도 모두 이런 연유에서 비롯됐다.

#명종#여름#어지럼증#심열증#이열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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