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새[클래식의 품격/인아영의 책갈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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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우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소리 내지 않기. (…) 소리 내지 않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한 방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정희(1947∼)가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 문장을 쓰는 소설가 중 한 명이라는 데 이견을 낼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유년을 그린 소설에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린이의 마음이 가지고 있는 깨질 듯 얇고 섬세한 아름다움 때문일까. 오정희의 첫 장편소설 ‘새’(문학과지성사·1996년) 이야기다. 주인공 열두 살 소녀 우미는 두 살 어린 동생 우일이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는 규칙을 만든다. 어쩌면 이 규칙은 생존법에 더 가깝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멀리 일하러 떠났다. 그래서 우미는 동생과 친척집 셋방을 짐짝처럼 옮겨 다니며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간다. 세상은 수모와 창피를 가르치고 어른들은 눈치와 구박을 준다. 외숙모는 매일 미치겠다고 중얼거리고 큰어머니는 “내가 왜 남의 새끼까지 맡아 골병들어야 하냐”고 화낸다. 젊은 새엄마는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집주인은 방세를 독촉하며 사납게 방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우미는 제 나이답게 징징 울거나 힘들다고 떼쓰지 않는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겪은 대로 세상을 대한다. 도망간 새엄마 말투를 흉내 내어 ‘아, 이 웬수’라고 중얼거리거나 밤거리에 혼자 나와 포장마차에 있는 아저씨들과 함께 술을 마신다. 곰 인형을 집으로 데려가 보살펴야 하는 학교 숙제를 하면서 자신이 대우받았던 것과 똑같이 곰 인형을 구박하기도 한다. “시끄럽게 굴면 때려줄 테야. 내쫓을 테야. 난 시끄러운 걸 못 참아. 혈압이 오른다구. 나는 곰순이를 쥐어박았다. 곰순이는 소리 내지 않는 법을 배울 것이다. 남의 집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배우게 될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숙한 우미의 모습은 어딘가 조금 섬뜩하다. 소설은 우미의 마음을 토로하거나 설득하듯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물이나 풍경처럼 고요하게 서술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우미의 덤덤한 무표정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미가 짓고 있을 표정을 아프게 상상하게 된다. 소설가는 새가 “흔히 한없는 가벼움과 자유로움의 상징으로 표현되지만 먹이를 구하기 위한 고달픔과 항상 포획자의 손길을 피해야 하는 불안과 위협 앞에 노출돼 있는 연약하고 불안한 존재”라고 말한다. 인생에 대한 방어막도 갖추지 못한 무른 존재가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했을 때 제 수준에서 그 상처를 감당하기 위해 선택한 생존법은 그 외에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몸 하나 기댈 곳 없이 날아다니는 지친 새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지 않는다면 우리는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새#소리내지않는것#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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