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발행한 ‘국방논단’ 1864호에 ‘미국의 신형 3종 저위력 핵무기의 기술적·전략적 특성과 향후 전망’이라는 흥미로운 보고서가 실렸다. 현재 미국 핵전략의 핵심인 ‘저위력 핵무기(Low-Yield Nuclear Weapons)’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북핵 시설 5개소를 저위력 핵무기로 타격할 경우 사상자 숫자는 100명 미만이 될 것”이라는 저자 조비연 KIDA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이 눈에 띈다.
“사상자 100명 미만으로 北 핵시설 무력화”
대개 핵무기는 대량살상무기의 상징이다. 현재까지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된 유일한 사례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선 눈 깜짝할 새 수만 명이 증발했고, 부상자 수십만 명이 생겼다. 오늘날 주요 강대국이 보유한 핵무기는 당시보다 수백 배 위력을 지녔다. 역설적으로 그 엄청난 위력이 지난 수십 년간 강대국 간 충돌을 막았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이다. 그 때문에 핵무기는 실전용 무기가 아닌, 정치적 무기라고들 한다.
그런데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쟁이 발발하면 곧장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대량의 전술핵무기가 존재했다. ‘핵 만능주의’의 광기가 지배하던 시절 보병이 휴대하는 ‘핵배낭’부터 보병부대의 무반동총 발사용 핵무기, 곡사포용 핵포탄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핵무기가 만들어졌다. 냉전이 한창일 때 한반도에도 전술핵무기 수백여 기가 배치됐다. 1980년대 이후 세계 지도자들이 조금씩 이성을 찾으면서 전술핵무기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남은 핵무기는 대부분 실전용이라기보다 ‘협박용’으로 존재한다.
핵무기를 다시금 사용 가능한 전술 영역으로 소환한 이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취임 1년 후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기 작성된 ‘핵태세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NPR)를 전면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시로 마련된 NPR의 방향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들어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미 국방부는 당시 새로 작성한 NPR에서 “탄두 위력이 수백 킬로톤(kt)에서 메가톤(Mt)에 이르는 기존 핵무기는 그 엄청난 위력 때문에 사실상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만으로 적의 핵무기 사용을 사전에 억제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적시했다. “미국은 한정된 지역과 목표를 대상으로 사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저위력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이런 핵무기는 기존 핵무기에서 증폭장치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제작할 수 있어 빠른 시일 내 실전 배치가 가능하다”는 것이 새 NPR의 핵심 내용이었다.
2018년 미국 국방부가 NPR를 수정한 뒤 미 합동참모본부도 변경된 국가 핵전략에 맞춰 핵무기 사용지침을 수정했다. 그 결과 미 합참은 이듬해 6월 ‘핵무기운용(Nuclear Operations)’이라는 지침서를 작성해 각 부대에 하달했다. 해당 지침은 저위력 핵무기의 사용 조건에 대해 “재래식 전역의 실패나 주도권 상실 가능성이 있을 때 평화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른바 ‘저위력 핵무기’는 별도 신기술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핵무기에서 증폭장치만 제거하면 되므로 상당히 단순한 구조다. 핵무기는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한 무기다. 다만 핵무기가 폭발한다고 해서 그 안에 탑재된 핵분열성 물질이 100% 효율로 분열을 일으키진 못한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의 우라늄 235 중 1.4%만 핵분열을 일으켜 15kt의 폭발력을 만들어냈다. 플루토늄 239를 이용해 만든 ‘팻맨’(나가사키에 투하된 핵무기)은 장전된 핵분열 물질의 14% 효율로 21kt의 위력을 발휘했다.
인공지진 발생 1kt 핵무기
핵분열 연쇄 반응을 이용한 핵무기는 아무리 우수한 설계를 적용해도 핵물질 25% 이상을 분열시키기 어렵다. 그 때문에 핵분열 효율을 크게 끌어올리고자 ‘다단계 핵무기’ 설계가 등장했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을 기폭제 삼아 초고온-초고압 상태를 만들고 삼중수소, 리튬-6 등 연료의 핵융합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발생한 엄청난 에너지를 이용해 핵분열 반응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 다단계 핵무기다. 냉전 시기 핵무기 개발 역사는 곧 핵무기의 위력을 극대화하려는 강대국 간 경쟁이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저위력 핵무기 운용 계획은 이런 단계를 모두 생략하고 가장 기본적 수준의 핵무기로 돌아간 것이었다. 증폭만 하지 않으면 위력이 크게 약화되므로 실전 사용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판단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저위력 핵무기 구상의 배경은 북한 및 이란의 위협이었다. 두 나라의 핵시설과 미시일 기지는 대부분 지하에 자리한다. 일반 폭탄으로는 파괴하기 어렵다. 가령 미군이 보유한 재래식 폭탄 최강자라는 GBU-57 MOP(Massive Ordnance Penetrator)는 14t이라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이용해 60m 지면을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 그럼에도 지하 100m 이상 깊이에 강화콘크리트로 구축한 북한 지하 시설은 파괴하기 어렵다. 하지만 벙커버스터(bunker buster) 탄두가 재래식 고폭탄이 아니라 핵탄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핵무기 1kt 위력은 일반 재래식 고폭탄 1000t과 같다. GBU-57 폭탄의 폭약 양이 2400㎏, 즉 2.4t 정도이므로 1kt 핵무기는 단순 비교하자면 GBU-57의 416배에 달하는 위력을 가진다. 1kt은 현존 핵무기치고는 약하지만 재래식 폭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이 정도 위력이면 강력한 인공지진을 일으켜 지하 구조물을 손쉽게 파괴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당시 수립한 핵전략에 따라 저위력 핵무기 2종을 완성, 배치했거나 배치를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먼저 배치한 W76-2 핵탄두는 해군 전략 원자력 잠수함(전략원잠)용이다. 트라이던트 II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탄두부에 탑재된다. 실전 배치가 임박한 공군용 B61-12 전술핵폭탄은 미군이 보유한 거의 모든 전투기종에서 투발할 수 있다. W76-2의 위력은 5~7kt에 이른다. 트라이던트 II 미사일 1발은 최대 14발의 W76-2 탄두를 탑재해 8000㎞ 이상 비행할 수 있다. 각 탄두는 마하(음속) 20 이상 속도로 낙하한다. 표적 상공에서 폭발하는 공중폭발, 지표면에서 폭발하는 지면폭발, 강력한 운동에너지로 땅속 깊이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지중폭발 등 3가지 모드 가운데 하나를 택해 목표를 타격할 수 있다. W76-2를 지중폭발 모드로 세팅하면 지하 수십m에서 폭발해 리히터 규모 5.5 이상의 인공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
유사시 북한을 저위력 핵무기로 타격하면 평양 지하 지휘소, 주요 핵무기 저장고 등 원하는 표적만 깔끔하게 파괴해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6월 미 해군은 전략원잠 펜실베이니아(USS Pennsylvania, SSBN-735)가 저위력 핵무기를 탑재한 채 동북아시아 해역에서 전략 초계 임무에 돌입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미국이 초계 중인 전략원잠의 동선을 공개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바이든 행정부, 공세적 핵전략 유지할 것”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NPR는 2022년 1월 이후 나온다. 그때까지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수립한 국가 핵전략 노선과 군의 핵무기 사용지침이 유효하다는 뜻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할 핵전략도 이전 행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비연 선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 핵전략 기조를 상당 부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북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억제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위반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저위력 핵무기 버튼을 만지작거릴 수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는 최근 미군의 행보에 유념해야 한다. 미국이 왜 동북아지역에 공격원잠 전력을 대폭 증강했는지 그 취지를 살펴야 한다. 특히 미군이 이례적으로 원잠 동선을 공개한 의도가 무엇인지 읽을 필요가 있다. 대화의 창은 아직 열려 있고 선택은 북한에 달렸다는 자만은 금물이다. 미국이 내민 손을 SLBM 발사라는 섣부른 도발로 쳐내는 순간, 그 대가는 북한 당국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참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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