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 젊은층 취향 저격, 新개념 가전 속속 등장
가전 용도, 더 디테일하게
판매는 라이브커머스로
‘재료를 하나하나 사다가 요리하는 것보다 밀키트로 요리하는 게 익숙하다.’
‘거실에서 TV를 보는 것보다 스마트폰으로 집안 어디에서나 방송을 보는 게 편하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이런 생각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매번 끼니를 배달음식이나 외식으로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침실과 주방에 각각 TV를 사 놓는 것도 무리다.
생활 패턴의 변화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면서 MZ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가전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기발한 가전이 새로 창출하고 있다.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전통 백색가전이 1세대 가전시장을 만들고 건조기, 식기세척기, 의류관리기, 로봇청소기 등이 2세대 가전으로 삶의 질을 한 단계 개선해 줬다면 최근 새로 등장하는 신가전은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을 발굴해 가며 수요를 충족시키는 3세대 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출시된 제품들은 가전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한 MZ세대의 눈높이에 철저히 맞췄다. 3세대 신가전은 ‘더 맛있는 집밥’처럼 얼핏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시장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세심한 수요를 자극하는 제품이다. 넷플릭스 같은 구독경제에 익숙한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만큼 ‘구독형 판매 방식’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거나 ‘라이브커머스’를 주요 판매 창구로 삼는 점도 특징이다.
○ ‘밀키트 요리 세대’를 위한 가전
“요리는 개인 실력 차가 커요.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손재주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죠. 누가 만들어도 똑같이 맛있는 밥은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박찬우 상무는 최근 출시한 ‘비스포크 큐커’의 출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큐커는 MZ세대가 선호하는 밀키트, 가정간편식(HMR) 전문 조리기기다. ‘더 맛있는 집밥’이라는 수요에 부응해 만들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라면을 가장 맛있게 끓이는 법은 봉지 뒤에 적힌 그대로 끓이는 것’이라는 말처럼 셰프나 밀키트 제조사가 내놓은 레시피를 그대로 적용한 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해 큐커의 개발 기간 1년 6개월 중 30% 이상을 맛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썼다.
“팀원 모두 6개월 넘게 큐커로 조리한 밀키트로 점심을 해결했어요. 다행히 밀키트 종류가 많아 질리진 않았습니다(웃음).”(박 상무) 프라이팬이나 전자레인지 등 기존 조리기기보다 나은 맛을 내는 재료의 비율, 조리 시간, 온도 등을 찾기 위해 국내 유명 식품회사들과 협업했다.
큐커는 MZ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대표적인 신가전으로 꼽을 만한 제품이다. 디자인부터 단순하고 세련됐다. 에어프라이어, 전자레인지, 그릴, 토스터의 기능을 하나에 갖고 있다. 덕분에 주방에 종류별로 늘어놓아야 했던 조리기기들을 대신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연동해 조리법을 불러오는 것도 가능하다.
작은 부족함이나 불편함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MZ세대를 겨냥해 1%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한 제품은 최근 가전의 트렌드다. LG전자가 최근 선보인 신개념 무선 모니터 ‘LG 스탠바이미’는 ‘집에서 움직이면서 영상을 보고 싶다’는 수요를 겨냥했다. 화면이 큰 제품은 들고 다니기 어렵고 스마트폰, 패드는 이동은 쉽지만 화면이 작아 성에 안 찬다. 이동식 스탠드 디자인을 적용한 27인치 TV는 들고 다니기 적당하면서 전원 연결 없이도 3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어 침실, 주방, 서재 등으로 옮겨 다니며 쓸 수 있다.
○ MZ세대 눈높이 맞추니 새로운 시장 생겨나
‘나에게 필요한 제품이라면 기다리지 않는다.’ MZ세대 눈높이에 맞춘 큐커와 스탠바이미는 시장에서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 됐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닷새 동안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큐커를 판매했는데 5종의 색상 중 ‘글램 썬옐로우’ ‘글램 핑크’ ‘글램 베이지’ 등 인기 색상 3종 제품은 준비된 물량이 매진됐다. 스탠바이미도 온라인 판매를 진행할 때마다 준비 물량이 동난다. 온라인 중고거래 커뮤니티에서는 웃돈을 얹은 거래도 이뤄진다.
두 제품 모두 출시 전 내부에서조차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스탠바이미 출시를 앞두고 LG전자 내부에선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불신의 목소리가 나왔다. ‘거거익선’(TV는 클수록 좋다는 뜻의 누리꾼 신조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형, 초고화질이 대세인 TV 시장에서 화질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에 못 미치고 크기도 애매한 제품을 어떤 소비자가 선택하겠냐는 의문이 나왔다.
큐커도 그랬다. ‘더 맛있게 조리한다’는 추상적인 기획 의도는 소수점 단위 숫자의 딱 떨어지는 기술로 승부하는 가전회사 임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박찬우 상무는 “큰 조직일수록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다”며 “많은 유관 부서와 파트너 기업들의 도움으로 나올 수 있었던 제품”이라고 말했다. 안팎의 우려를 잠재운 것은 결국 맛. ‘땡초 불족발’ 블라인드 테스트에 참여한 고위 임원들은 만장일치로 큐커의 맛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MZ세대의 새로운 욕구는 정체된 시장으로 여겨졌던 가전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LG전자의 스타일러, 삼성전자의 에어드레서 등 의류관리기는 세탁기와 다리미만으로 옷을 관리해 온 기성세대는 생각지 못했던 시장을 만들어냈다.
삼성전자가 5월 선보인 슈드레서도 마찬가지다. 의류 관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신발만 전문적으로 관리해 주는 가전은 달라진 사회상도 반영한다. 낡아 떨어질 때까지 같은 신발을 신어온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층은 한정판 스니커즈에 수십만 원을 투자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 아껴 신다가 질리면 다시 팔 수 있는 수집품으로 자리 잡은 만큼 신발 관리에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이들에게 슈드레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가전이 됐다.
○ 소비자 공략도 MZ세대 방식으로… ‘라방’으로 소통하고 구독 서비스로 판매한다
MZ세대는 가전 업계에서 새로운 큰손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가 큐커에 ‘구독형 판매 방식’을 도입한 것도 MZ세대가 구독형 소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큐커를 함께 개발한 8개 식품사 직영몰에서 밀키트를 포함한 식료품을 2년 동안 일정 가격 이상 구매하면 출고가 59만 원 상당의 제품을 무료로 제공한다.
취향에 따라 세대를 넘나드는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신가전의 강점이다. 삼성닷컴에는 “아내에게 요리를 해주기 위해 구입해 장어구이를 맛있게 만들었다. 만족스럽다”는 70대 고객의 후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1968년생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LG 스탠바이미를 구입한 인증사진을 올리고 “묘한 매력이 있다”며 호평했다.
판매 방식도 색다르다. 라이브커머스(라이브 방송·라방)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큐커를 라방으로 처음 공개했고 누적 시청자가 100만 명을 넘겼다. 라방은 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실시간 소통도 가능해 홈쇼핑보다 한 단계 진화한 방식이다. 연예인,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가 등장해 예능 같은 진행을 한다. 쉽게 싫증을 느끼는 MZ세대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요소다.
지난해 한국의 양대 포털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을 중심으로 시작한 라방은 MZ세대가 제품을 접하는 핵심 창구로 자리를 잡았다. 포털뿐만 아니라 G마켓, 쿠팡 등 온라인 유통사와 무신사 같은 전문 플랫폼 등도 가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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