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병원 ‘메디스토리’]암 환자 다수가 겪는 정신적 고통
치료 순응도 떨어뜨려 예후 악화… 정신의학과와 협진 통해 환자 관리
정신뿐 아니라 신체 증상까지 호전… 美의 경우 필수 치료사항으로 권고
직장인 A 씨(51)는 최근 인하대병원에서 초기 위암 판정을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족력이 없는데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하는 등 건강관리에 신경을 썼기에 정신적인 충격은 더욱 컸다. 진단과 치료 기술의 발전으로 초기 위암의 생존율이 90% 이상이라는 통계와 의료진의 설명에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삶의 전반에서 자신감은 떨어졌고 우울증세까지 나타났다.
인하대병원 의료진은 A 씨를 상대로 신속하게 암 절제술을 시행한 뒤 정신건강의학과를 통한 ‘디스트레스 치료’를 시작했다. 이후 불면증이 사라졌고, 우울증세도 차츰 호전돼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6일 인하대병원에 따르면 암 환자라면 누구나 신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다. 이들이 정신적으로 겪는 고통을 ‘디스트레스’라고 한다.
당혹감과 슬픔, 두려움과 같이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 반응부터 지속되는 우울감과 불면, 사회적 고립처럼 병적인 상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A 씨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위로 차원에서 초기 위암의 생존율이 높다는 얘기를 계속 했지만, 정작 나는 매일을 밤잠을 설치면서 불안함 속에 지냈다”며 “디스트레스 치료를 시작하면서 한결 마음이 편해졌고, 신체적인 치료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A 씨의 디스트레스를 담당한 주치의 인하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원형 교수는 “디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암 치료도 속도를 낼 수 있다”며 “디스트레스가 심한 환자들은 암 치료 순응도가 떨어져 암 치료 예후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종합암네트워크(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는 암 환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위해 모든 암 환자에게 디스트레스를 필수적으로 측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암 환자들은 진단 직후부터 수술과 항암, 방사선 조영 등과 같은 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다. 암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 치료 후유증, 신체 기능 저하가 정신건강을 악화시킨다.
인하대병원 등 대학병원에서는 암 환자의 정신건강을 위한 클리닉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인하대병원은 혈액종양내과, 유방갑상선외과와 정신건강의학과가 협진을 통해 암 환자의 정신 건강을 돕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암 환자와 보호자는 이러한 서비스를 모르거나, 알고 있다 해도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진료를 주저한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나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고 오해하기 때문에 진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암 환자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우울, 불안, 불면과 같은 정신증상뿐 아니라, 통증과 식욕부진 등 신체 증상의 호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일부 환자의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암으로 인한 절망이 더 나은 삶을 향하는 희망으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역경 이후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암 환자의 디스트레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삶의 질이 향상되고, 환자와 의료진 간의 소통이 원활해진다”며 “결국 환자의 치료 만족도가 높아져 암의 치료 결과를 좋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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