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접종률 31%, 내국인 절반…마지막 ‘백신 사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1일 18시 30분


저조한 외국인 노동자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경기도가 건강검진용으로 쓰던 버스를 동원해 외국인인 인구가 많은 곳을 찾아가는 백신 접종 서비스를 시작했다. 8일 오전 경기 안산시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 주차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백신 접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안산=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저조한 외국인 노동자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경기도가 건강검진용으로 쓰던 버스를 동원해 외국인인 인구가 많은 곳을 찾아가는 백신 접종 서비스를 시작했다. 8일 오전 경기 안산시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 주차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백신 접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안산=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없는 주소라고 나오는데요? 노 어드레스(No address). 주소 안 적으면 백신 못 맞아요.”

8일 오전 경기 안산시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 주차장에 세워진 버스 안에서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과 외국인 근로자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 과정에서 중국 출신의 외국인 근로자 A 씨가 가짜 주소를 적어냈기 때문. 미등록(불법체류) 신분이 노출되는 걸 걱정한 것이다. 현장에 ‘불법 체류 단속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현수막도 내걸렸지만 A 씨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의료진의 설득 끝에 A 씨는 결국 지인 주소를 적어낸 뒤 백신을 맞았다.

경기도는 이 곳에서 6일부터 사흘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위한 ‘백신 버스’를 운영했다. 총 348명이 이곳에서 백신을 맞았는데, 이 중 152명이 A 씨처럼 불법 체류 외국인이다.

“어느 손으로 밥 먹어요? 레프트(left)? 라이트(right)?”

접종자 대부분이 한국어에 서툴다 보니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는 데도 시간이 지체되기 일쑤였다. 어느 팔에 백신을 맞을 것인지를 묻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의료진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숟가락질하는 듯한 손짓을 해보이며 어느 팔에 주사를 맞을지 물었다. 백신 버스에서 접종을 담당한 경기의료원 수원병원 김혜란 간호사는 “말이 통하지 않아 현장에서 부작용 등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외국인 대상 홍보가 좀 더 체계적으로 이뤄지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 외국인 접종률, 전 국민의 절반 수준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를 앞두고 부진한 외국인 접종률로 인해 방역당국이 비상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1일 오후 4시 기준 국내 접종 완료율은 59.6%다. 하지만 외국인만 따로 보면 31.4%(7일 0시 기준)로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렇듯 외국인들이 ‘백신 사각지대’에 놓이다 보니 이들을 중심으로 한 집단감염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대구에서 발생한 외국인 지인모임 관련 집단감염은 확진자가 840명까지 늘었다. 질병청에 따르면 9월 12일부터 2주간 발생한 성인 확진자의 83.1%는 백신 미접종 및 불완전 접종군에서 발생했다. 그만큼 미접종자의 감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체류 외국인 백신 접종률을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 이 때문이다. 경기도는 이달 말까지 화성, 안성 등 외국인 밀집 지역을 돌며 백신 버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경남 김해시는 연락처가 등록돼 있지 않은 외국인 6000여 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다.

● “홍보만으론 부족… 한국인 업주 협조 절실”
경기도의 백신 버스는 백신 접종 장소를 모르거나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희소식이 됐다. 직장 근처에 설치돼 찾기가 쉽고,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출·퇴근길에 접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8일 백신 버스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 출신 B 씨는 “어디서 백신을 맞을 수 있는지 몰랐는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백신 버스 홍보물을 보고 왔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백신 접종 정보를 제공하거나 이동식 접종을 시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신 버스에서 만난 접종자들은 “이곳에 나온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중국동포 박모 씨(51)는 “백신을 맞느라 하루 이틀 쉬면 일감이 끊길까봐 직장에 말을 못 꺼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외국인 근로자 인권 단체들도 사업주들의 인식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철영 원주외국인주민지원센터 대표는 “회사에서 여권을 빼앗아가 백신을 못 맞고 있다는 외국인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주민연대 샬롬의 집 관계자는 “소규모 업장일수록 근로자들의 백신 접종을 꺼리는 분위기가 크다”며 “특히 마사지 업소 등에서 일하는 여성 외국인 근로자 중에는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 “외국인도 형편 되면 mRNA 접종해야”
방역당국은 외국인 근로자 접종에 얀센 백신을 활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접종 간격에 맞춰 2차례 접종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얀센은 다른 백신과 달리 1회 접종만으로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돌파 감염 비율이 화이자 등 ‘mRNA’ 방식 백신에 비해 높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외국인이라도 거주지가 일정한 경우에는 얀센보다 예방 효과가 더 높은 다른 백신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11일 오후 4시 기준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1차례 이상 맞은 사람은 4000만6549명으로 집계됐다. 백신 접종 사업을 시작한 후 227일 만에 1차 접종자가 4000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이날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1297명으로 2개월여 만에 가장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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