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시장 성장, 한국 경제 미래 될 수 없다

  • 주간동아
  • 입력 2021년 10월 16일 10시 21분


[홍춘욱의 투자노트]
소비보다 저축 우선인 현실…세계 소비시장 점유율 유럽에도 뒤져

홍춘욱 박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지만 개인 투자자로서는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모두 갖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재직 당시 주식투자가 금지됐던 그를 구원한 것은 달러 투자였다. 2016년 퇴직 후 환율 급상승기를 맞아 환차익을 실현하고 그 돈으로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면서 2019년 조기 은퇴의 꿈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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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한국 수출 경기를 좌우하는 요인이 선진국, 그중에서도 미국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선진국 소비 경기가 조금만 좋아지면 한국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조금만 위축돼도 수출이 순식간에 감소한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중국이 수년 내 미국 경제규모를 제친다는데, 이제 중국 소비시장이 선진국을 대체할 가능성은 없는가.”

중국 소비시장이 한국에 ‘안정적 소비처’로 부각되면서 수출이 점점 안정화할 것이라는 희망이 담긴 질문으로 보인다. 그동안 발간된 글로벌 연구기관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8년을 전후해 중국이 미국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제칠 가능성이 높다는데,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경제 외형이 커진다고 소비시장 규모도 최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한국무역협회, 2020. 12. 11, ‘중국 GDP, 2028년 미국 추월… 세계 1위 도약’).

중국 가파른 경제성장 배경은 높은 저축률
‘그래프1’은 세계 소비시장 점유율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중국 소비시장 점유율이 꽤 올라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12%대에 머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소비시장 규모는 아직 미국이나 유로화 사용 지역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그렇다면 왜 중국 소비시장은 경제 외형에 비해 성장 속도가 더딘 걸까. 오늘은 이 의문을 풀어보자.

중국 경제가 그동안 가파른 성장을 기록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무한에 가까운 설비투자 때문이다. ‘그래프2’에 나타난 것처럼 GDP에서 투자 비중이 2010년 전후로 47%를 기록한 바 있다. 기업 혹은 정부가 기계장비를 도입하고 새로운 공장을 지으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굴착기 1대로 일하던 현장에 새로운 굴착기가 도착할 경우 이 공사현장의 작업 진행 속도는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물론 굴착기가 2대로 늘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10대, 20대가 된다면 작업 진행 속도가 오히려 느려질 수도 있다. 이 경우 생산 효율을 추가적으로 향상하기 위해서는 기계의 질적인 수준이 높아지거나 굴착기를 다루는 근로자의 숙련 수준이 올라가야 하는데 이는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를 경제학계에서는 ‘중진국 함정’이라고 부르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다룰 계획이니 잠시 미뤄두자.

다시 중국의 투자 붐 문제로 돌아와, 각 기업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단행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 이유는 중국 가계가 열심히 저축한 덕분이다. 2000년 이후 중국 가계 저축률은 기업 투자율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정부와 기업 부문의 공격적 투자를 뒷받침해왔다(그래프2 참조). 그런데 저축은 결국 소득에서 지출을 뺀 값이니, 저축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가계 소비가 부진하다는 말이 된다. 더 놀라운 것은 1년 만기 예금금리가 2016년 이후 1.5%로 고정됐는데도 저축 열기가 꺾이지 않은 데 있다. 대체 중국 가계는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가.

투자처 부재, 주택 가격 급등이 저축으로 이어져
초저금리 상황임에도 중국 가계가 소비보다 저축에 열중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대안 부재다. 최근 폭락 사태에서 보듯, 중국 주식시장이 2007년 이후 ‘잃어버린 14년’을 겪으며 신뢰가 하락한 것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2년 동안 상하이 증시의 신규 주식 공급(증자, 상장, 전환사채 주식 전환 등) 물량이 시가총액의 10%를 웃도는 등 주식시장을 자금 조달 수단으로 보는 기업과 정책 당국의 태도에 투자자들이 실망한 것도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대안 부재 못지않게 영향을 미친 것은 ‘그래프3’에서 볼 수 있는 주택 가격 급등이다. 중국은 도시지역 주택 보유율이 70%를 넘어서지만 대부분 노후화해 신축 주택 선호가 대단히 높다. 특히 예금금리가 떨어지면서 대출금리도 함께 내려갔기에(1년 기준 3.5%) 주택 가격 상승 속도는 2016년 이후 더욱 가팔라진 상황이다. 그러나 가계소득 증가율이 주택 가격 상승률을 제때 쫓아가지 못했기에 중국 주요 도시의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배율(PIR)은 40배를 넘어서고 있다. 결국 중국 가계는 주택 가격 상승을 쫓아가기 위해 금리 수준에 상관없이 더 많은 돈을 저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셈이다.

이상의 분석을 감안할 때 중국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을 대체할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성장하기는 힘들 것 같다. 더 나아가 ‘한한령’ 등 다양한 방식으로 타국 상품을 규제하는 등 폐쇄적인 모습이 더욱 강화되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조선비즈, 2021. 2. 16, ‘50조 중국 게임시장 공략해야 하는데… 4년 만에 한국 게임 ‘찔끔’ 허가’). 따라서 상당 기간 한국 수출은 선진국 소비시장의 변화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관찰이 필요할 듯하다. 다음 시간에는 ‘중국의 중진국 함정’ 위험에 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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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이코노미스트·경영학 박사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10호 (p54~55)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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