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존엄한 죽음’ 빼앗긴 말기환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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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담병원 차출 영향, 호스피스 병상수 2년새 18.4%↓
입원 대기기간 기약없이 늘어나… 말기 환자 병상 기다리다 숨지기도
‘가정형 호스피스’ 선택 환자도 증가… 전문가 “정부 소극적 지원탓” 지적


윤모 씨(48·여)는 첫 직장에 들어간 20여 년 전,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매년 어버이날마다 어머니께 카네이션을 드려 왔다. 올해 5월 8일은 더욱 특별했다. 담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어머니 양모 씨(75)가 맞는 마지막 어버이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씨는 올해 어버이날엔 어머니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호스피스 입원을 기다리며 일반 암 병동에 있던 어머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상주 보호자 1명을 제외하면 면회할 수가 없었다. 윤 씨는 상주 보호자인 언니에게 카네이션을 전달하고 병원을 나오면서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 양 씨는 8월 숨을 거뒀다.

○ “호스피스 입원 대기 2배로”

암 등 말기 환자라면 누구나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에게 수명 연장보다 통증을 줄이고 심적 안정에 초점을 두고 치료하는 호스피스 병동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은 환자들에게서 이런 ‘존엄한 죽음’의 기회를 앗아가고 있다.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말기 환자를 치료하는 호스피스 병상은 2019년 전국 1416개에서 올 6월 1155개로 18.4% 줄었다. 호스피스 병상을 둔 병원 86곳 중 17곳이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차출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길었던 호스피스 입원 대기 기간은 최근 기약 없이 늘어나고 있다. 올 7월 아버지를 폐암으로 떠나보낸 최모 씨(37·여)는 호스피스 병상을 찾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그나마 서울 강서구 자택 인근엔 빈 병상이 없어 경기 안양시까지 가야 했다. 최 씨는 “호스피스 입원 대기 중에 입원하는 일반 중소병원에서는 강한 진통제를 쓰지 못한다. 이런 환자들이 말기 암 통증을 억누르지 못해 힘겨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결국 호스피스 병상에 입원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환자도 나온다. 서울 강동구 인성기념의원은 두 달 전 호스피스 병상을 2배로 늘렸지만, 입원에 걸리는 시간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의 2배 수준이다. 이 의원 관계자는 “몇 주 만에 순서가 돌아온 환자 측에 전화해보면 ‘이미 응급실에서 돌아가셨다’고 알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 진통제 투약 어렵지만 가정 내 임종 택해
코로나19 이후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자택에서 호스피스 팀의 방문 서비스를 받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환자도 늘었다. 서울성모병원에서 가정형 호스피스를 이용한 환자 가운데 자택에서 임종을 맞은 비율은 2019년 14%에서 올해 3∼8월 29%까지 높아졌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입원형과 달리 가족 면회 제한이 없지만, 임종 직전 고통이 극심해져도 진통제나 수면제를 신속히 투여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전문가들은 최근 호스피스 병상에 여유가 없는 데엔 코로나19의 영향이 있지만, 그보다 앞서 정부가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2023년까지 암 사망자 30% 이상이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확대하기로 했지만,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하는 호스피스 병동이 생겨나면서 호스피스 이용률은 5년째 20%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윤영호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호스피스 수가가 충분하지 않고, 병동 개조에 대한 정부 지원도 없다”고 지적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호스피스 환자들은 ‘곧 죽을 사람’이라는 인식에 따라 정책상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존엄한 죽음#말기환자#입원 대기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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