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8월 14일 서울의 한 단칸방에서 혼자 살던 여성이 TV 카메라를 응시하고 자신의 이름이 김학순이라고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그녀는 겨우 17세일 때 중국의 ‘위안소’라는 곳에 끌려가 일본군에게 당한 경위를 소름끼치도록 자세하게 묘사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국내 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고발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1924∼1997)의 부고기사(사진)를 별세 24년 만인 25일(현지 시간) 게재했다. 사망 당시에는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는 ‘더 이상 빠뜨릴 수 없는 인물들(Overlooked No More)’ 시리즈의 일환이다. 김 할머니는 1997년 12월 16일 폐 질환으로 별세했다.
NYT는 이날 신문 부고면의 절반을 할애해 ‘김학순, 위안부 여성을 위해 침묵을 깨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재조명했다. 김 할머니 증언의 의미를 두고 “일본의 많은 정치지도자가 수십 년간 부인했고, 지금도 부인하고 있는 역사에 생생한 힘을 실어줬다”고 평가했다. 1998년 보고서에서 일본군 위안소 운영을 반인류 범죄로 규정한 게이 맥두걸 전 유엔 특별보고관은 올해 한 콘퍼런스에서 “내가 보고서에 쓴 어떤 것도 김 할머니의 30년 전 직접 증언이 미친 영향력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고 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호주 등 세계 각국에 살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NYT는 “김 할머니의 공개 증언은 다른 생존자들이 걸음을 내딛도록 용기를 줬다”면서 증언은 위안소 설치에 군이 관여했음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담화(1993년)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NYT는 “나의 바람은 그들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는 말을 듣는 것뿐”이라는 김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 내용으로 부고기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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