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호 잡지 펴낸 출판인 모임 ‘편않’
출판계 관행 허물 비전 제시 목표
회비 모아 제작하고 최근 단행본도
“정해진 날짜와 장소에서만 읽을 수 있는 글이 서울 곳곳에 숨어 있다면 어떨까요? 서울이 표지가 되고, 글을 찾아 걷는 행위가 읽기 경험이 되는 거죠.”
출판인 모임 ‘편않’(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의 정지윤 편집자(33)는 “종이책이 점점 덜 읽히는 시대에 출판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매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편않은 기존 출판계 관행에 의문을 갖고 새로운 장을 열어보자는 취지로 편집자 5명이 2016년 결성했다. 2018년 1월부터 반년마다 같은 이름의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무료로 배포하는 이 잡지는 출판계는 물론이고 일반 독자에게도 관심을 끌며 발행부수가 400부(1호)에서 900부(7호)대로 늘었다. 이들은 잡지의 인터뷰 내용을 갈무리한 단행본 ‘격자시공’을 펴내기도 했다. 정 씨와 지다율(활동명·36) 편집자, 기경란 디자이너(38)를 최근 서울 동대문구 편않 사무실에서 만났다.
“편않이 제시하는 비전이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희 잡지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균열이라고 생각해요. 잡지를 무료로 발행한 건 독자들이 활자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느끼도록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어요.”(지다율)
잡지 편않은 독자들이 “이렇게 공들인 게 왜 무료냐”고 물을 정도로 탄탄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 ‘편집자’(1호) ‘디자이너’(2호) 등 특정 출판직군을 비롯해 출판계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다룬 시리즈(4∼6호)를 내놓았다. 멤버들이 매달 갹출해 운영비를 대고 있다. 지 씨는 “단행본 출간에 돈이 많이 들어 최근에는 3차 추경까지 했다”며 웃었다.
외부 지원이 없다는 건 제작환경이 자유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 디자이너는 기존 책들과 차별화된 표지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번 단행본은 종이 질감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표지에 흔히들 하는 코팅 처리를 거치지 않고 비닐로 포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찢고 붙이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오감만족의 책’을 꿈꾼다고 했다.
각자 소속된 출판사를 욕하다 결성된 모임이라는 농담 뒤에 숨은 이들의 진의는 무엇일까. 이들은 “출판계에 답답한 일들이 너무 많다”며 사비까지 털어 출판계를 위한 잡지를 만드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책을 사랑하는 제 모습에서 출판의 미래를 봅니다. 저 같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을 테니까요. 이 마음이 다할 때까지 새로운 독자들을 출판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한 상상력과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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