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승부수는 차량용 반도체기업 인수합병”

주간동아
입력 2021년 11월 27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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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파운드리 20조 원 투자 확정… 이재용 부회장 시선은 M&A로

11월 2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워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만났다. [뉴시스]

승어부(勝於父: 아버지를 능가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승어부에 다가서려면 퍼스트 무버로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이 부회장은 5년 만의 미국 출장을 마무리하면서 ‘미래’와 ‘뉴 삼성’을 키워드로 남겼다.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자”는 것이다.

뉴 삼성은 이 부회장이 10월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1주기 추도식에서 꺼낸 화두다. 창업자의 각오로 혁신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 청사진 퍼즐 맞춰

뉴 삼성을 향한 이 부회장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11월 14일 오전 캐나다·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미국 출장은 2016년 7월 선밸리 콘퍼런스 참석 이후 5년 4개월 만이다. 이번 출장을 통해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 도약을 위한 청사진의 퍼즐을 상당 부분 맞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반도체는 바이오와 함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집중 육성하기로 한 삼성그룹의 미래 성장 사업이다. 이 부회장은 8월 ‘코로나19 이후 미래 준비 계획’을 발표하면서 향후 3년간 240조 원(국내 18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가 정보기술(IT)업계를 넘어 자동차 등 전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산업이 된 데다, 팬데믹으로 백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고령화 추세가 심화하면서 바이오제약 산업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발표의 배경이다.

삼성전자는 투자를 확대해 전략사업 주도권을 확보하고, 첨단산업 위주로 고용을 확대해 3년간 4만 명을 직접 채용하기로 했다.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DMO)·바이오시밀러 강화를 통해 바이오업계에서도 제2 반도체 신화 창출을 해내겠다는 의지다.

올해 초에도 이 부회장은 서울 서초구 우면동 삼성리서치에서 세트 부문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며 “미래 기술 확보는 생존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변화를 읽어 미래를 선점하자. 오로지 회사가치를 높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데 전념하자. 선두기업으로서 몇십 배, 몇백 배 책임감을 갖자”고 말했다.

총수가 직접 뛰자 구체적 성과도 나왔다. 이 부회장의 출장 기간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제조 전문업체) 생산라인 건설 부지가 최종 선정된 것. 삼성전자는 11월 23일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그레고리 애벗 텍사스 주지사, 존 코닌 상원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가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테일러시에 세우는 신규 생산라인은 2022년 상반기 착공해 2024년 하반기 가동하는 게 목표다. 예상 투자 규모는 170억 달러(약 20조 원)로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다. 향후 5G(5세대), HPC(High Performance Computing: 고성능 컴퓨팅), AI(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 생산라인이 완공되면 삼성전자는 기흥/화성-평택-오스틴/테일러를 잇는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생산체계를 갖추게 된다. 신규 라인은 평택 3라인과 함께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달성하는 핵심 생산기지가 될 전망이다.

멈췄던 M&A, 속도 낼 듯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삼성전자의 다음 목표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다. 반도체는 크게 설계→생산→조립→검사, 유통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및 개발 전문업체) 기업으로부터 수주 받아 칩을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부와 직접 칩을 설계하는 시스템LSI(고밀도집적회로) 사업부로 나뉜다.

대만 시장조사 전문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점유율(매출 기준)은 대만 TSMC가 52.9%로 1위, 삼성전자가 17.3%로 2위다. 반도체는 나노미터(nm: 10억 분의 1m) 단위인 회로의 선폭이 좁을수록 저전력-고효율 칩을 만들 수 있다. 삼성전자는 TSMC보다 먼저 내년 상반기 중 3나노미터 공정에 GAA(Gate-All-Around) 기술을 도입하고, 2세대 GAA 기반 3나노미터 공정을 2023년부터 양산해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간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분야 권위자인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삼성전자가 그동안 시장에서 TSMC보다 어려웠던 점이 ‘빅 커스토머(고객)’가 너무 TSMC에 쏠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삼성전자가 미국에 투자하면서 구글, 페이스북(메타), 아마존, 테슬라 같은 회사들이 삼성전자에 반도체를 주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미국 출장 기간 방문한 기업들도 반도체가 필수 불가결인 업종이었다.
한동안 멈춰 있던 대규모 인수합병(M&A)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다음 승부수가 차량용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전자의 대형 M&A는 2016년 미국 차량용 전자장비 기업 하만인터내셔널을 9조4000억 원에 인수한 이후 멈춰 있었다. 올해 초 열린 삼성전자 2020년 4분기 콘퍼런스 콜에서 최윤호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년 내 의미 있는 M&A를 추진할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최 CFO는 “수년간 지속적으로 M&A 대상을 매우 신중하게 검토했다. 대내 불확실성으로 실행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준비해온 것을 토대로 이번 정책 기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M&A 실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통상적으로 R&D는 비용으로 처리하고 시설투자와 M&A는 보유 현금에서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 보유액은 120조4700억 원이다. 총알은 충분하다. 지속적인 현금 증가는 회사 경영 측면에서도 부담 요소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M&A가 차량용 반도체 분야일 것으로 본다. 이미 몇 차례 이야기도 나왔다. 현재는 수익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되는 수년 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M&A 유력 대상으로 여겨지던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업체 NXP세미컨덕터즈(NXP)는 지난해 독일 인피니온테크놀로지스에 이어 글로벌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한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부터 수차례 인수를 검토했으나 금액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NXP의 ‘몸값’은 60조~80조 원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NXP 몸값을 수용한다 해도 M&A에 따른 경쟁국의 반독점 심사 리스크도 고려할 부분이다. 2018년 미국 반도체업체 퀄컴이 NXP를 인수하려다 실패했는데, 중국에서 승인을 연기하며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업계에서 거론되는 차량용 반도체 M&A 대상 기업은 고전압에 강한 반도체 기술에 특화된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분야 선두업체 일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독일 인피니온테크놀로지스,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M&A 대상 기업을 신중히 검토하는 과정에 있으며 현재까지 확정된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9박 11일 광폭 행보
냉혹한 현실 목격한 李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에서 만난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왼쪽은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 오른쪽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진 제공 ·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1월 16일(현지시각)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본사에서 모더나 공동설립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누바 아페얀 의장과 만났다. 아페얀 의장은 1999년 설립한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을 통해 혁신적인 바이오텍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해왔다. 이 부회장과 아페얀 의장은 코로나19 백신 공조와 추가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인 11월 17일에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 버라이즌의 미국 뉴저지주 본사를 찾아 한스 베스트베리 최고경영자(CEO)와 경영진을 만났다. 두 사람은 2010년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각각 삼성전자 부사장과 스웨덴 통신기업 에릭슨 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일을 계기로 친분을 이어왔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버라이즌에 7조9000억 원 규모의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포함한 네트워크 솔루션을 지속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부회장은 11월 18, 19일에는 미국 연방의회에서 반도체 인센티브 법안을 담당하는 의원들을 만나 반도체 지원법 처리에 대해 논의했다. 또 백악관 고위 관계자와 만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결 방안 등 현안을 협의했다.

이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 주요 기업 경영진과 만남을 이어갔다.

11월 20일 미국 시애틀에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와 만나 차세대 기술에 대한 협력과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후 아마존을 방문해 AI(인공지능)와 클라우드 컴퓨팅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반도체 및 세트(완제품) 연구소인 DS미주총괄(Device Solutions America·DSA)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방문한 이 부회장은 이튿날에는 구글 본사에서 순다르 피차이 CEO 등 경영진과 면담하고 상호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11월 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로 귀국한 이 부회장은 취재진에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래된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회포를 풀었고,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어 참 좋은 출장이었다”면서도 “투자도 투자지만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니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탄소 발자국’ 한 걸음 더 줄였다
삼성전자 ESG 경영

삼성전자는 최근 메모리·시스템 반도체에 이어 LED(발광다이오드) 제품에까지 ‘탄소 발자국’ 인증을 확대했다.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제품 20종이 영국 카본 트러스트로부터 ‘제품 탄소 발자국’(Product Carbon Footprint·PCF) 인증을 취득했다. 지난해 ‘제품 탄소 발자국’ 인증을 받은 메모리 반도체 5종의 후속 제품은 탄소저감을 인정받아 ‘탄소저감 인증’을 획득했다. ‘탄소저감 인증’은 탄소 발자국 인증을 받은 제품 또는 그 후속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실제로 감소시켰을 때 받을 수 있다.

전장 LED 패키지 제품 4종 ‘C-Series’(Gen3 3W White, Gen3 3W Amber, Gen2 3W White, Gen2 3W Amber)는 업계에서 처음으로 글로벌 안전과학 전문기업 UL의 ‘탄소 발자국’ 인증을 받았다. 이번에 인증된 제품은 전력 소모를 줄여 더 오랫동안 전기차 배터리를 쓸 수 있게 한다.

장성대 삼성전자 DS부문 지속가능경영사무국 전무는 “반도체 생산 전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통해 초격차 기술력을 넘어 친환경 반도체 제품 개발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