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 기업들은 지금까지 반도체, 휴대전화, 가전,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등 세계를 선도하는 제품과 기술력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제품과 기술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힘’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이 지금과 같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제품과 기술로 시장을 선도하는 동안 기업의 문화와 사람도 그에 걸맞게 성장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4차 산업혁명, 미중 무역갈등, 환경 문제, 세대갈등, 고령화, 빈부격차와 불평등, 공정성 등 자본주의 성장 과정에서 서구 사회가 지난 수 세기 동안 경험했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경제·사회·정치적 문제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불확실성이 미래를 지배할 것이며 오직 인간이 지닌 지적 잠재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혁신, 창의성, 전문성, 다양성, 협업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기업 내부를 들여다보면 혁신을 강조하면서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있고, 창의적 인재를 원하면서 규정과 절차를 따르도록 하고, 전문가가 되라고 외치면서 위계질서에 얽매여 있고, 다양성과 협업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획일성과 경쟁에 직원들을 내모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글의 전 최고인사 담당자인 라즐로 복이 말한 ‘백미러를 보면서 운전하는’ 형국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려면 단기적인 경쟁과 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의 지적 잠재력과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기업문화와 인사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지난주 발표된 삼성전자의 인사제도 혁신안을 보면 그동안 움츠리고 있었던 삼성전자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과감한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제도 일부를 개선하는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인사제도 전반에 대한 대대적 혁신안을 마련했다.
인사제도 혁신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과감하고 미래지향적인 변화 방향을 담고 있다. 직급통합과 승진연한 폐지를 통해 ‘연공주의’를 과감히 탈피하고 성과와 전문성에 기반한 인사체계의 기틀을 마련했다. 지시와 통제 중심의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직원들의 성장과 자율을 지원하는 인사체계를 마련했다는 점도 의미 있다. 상대평가같이 불필요한 내부 경쟁을 유발했던 제도들을 과감히 폐지하고 여성 인력과 고령자 등 모든 직원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인사제도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삼성의 이번 인사제도 혁신안은 뉴 삼성의 큰 걸음을 내딛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혁신안은 시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혁신은 대부분 산업의 핵심부가 아니라 주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인내심을 갖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변화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도 시행 과정에서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도 있다.
인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삼성전자에서 시작된 변화의 바람이 확산되어 한국 기업들이 문화와 사람을 통해 경쟁력을 한 단계 드높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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