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료붕괴 위기]
수도권 병상 대기자 1500명 넘어… 소생술 포기 각서 써야 병상 배정
정부, 수도권 모임 6명 → 4명 축소… 식당영업 밤 9, 10시 제한 적극검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현장 곳곳에서 ‘의료 붕괴’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보건소는 자택에서 병상 배정을 기다리다 상태가 나빠진 80대 여성 코로나19 환자 A 씨에게 “DNR에 서명해야 빨리 입원할 수 있다”는 취지로 안내했다. DNR는 ‘심폐소생술 포기각서’다. 상태가 심각해져도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의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중환자 치료 환경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이제 의료진은 회복 가능성이 낮은 고령 환자에게 여력을 쏟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명치료 포기’ 의사를 밝힌 환자에게 병상을 내주는 것이다. A 씨도 DNR 서명 후 응급실로 이송됐다.
현행법상 연명의료 포기 결정은 담당의사 설명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병상을 기다리다 지친 코로나19 중환자들이 이를 ‘치료 기회’와 맞바꾸고 있다. 13일 0시 현재 수도권에서 하루 이상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코로나19 환자는 1533명이다. 비수도권도 확진자와 중환자가 급격히 늘면서 위험도가 수도권과 같은 ‘매우 높음’으로 올라갔다.
방역당국은 수요일(15일)까지 이어질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통 주말에 검사량이 감소하는 효과가 사라지면서 수요일 오전에 발표하는 확진자 수가 폭증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주 중반 확진자가 8000명대에 접어들면 곧바로 특단의 대책을 발표하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수도권 사적 모임 인원을 6명에서 4명으로 줄이고, 식당 카페의 영업시간을 오후 9시나 10시로 줄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응급실로 번진 병상 대란… 심정지-호흡곤란 환자도 ‘수용 불가’
“사실상 의료 붕괴” 다급한 현장
119구급차에 실려 온 심정지 환자가 응급실 문턱도 밟지 못했다. 이 환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였다. 당시 응급실 음압격리 병상은 전부 다른 코로나19 환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치료를 받다가 숨진 다른 코로나19 환자의 시신은 사흘 동안 응급실에 머물러야 했다. 장사시설 이용 순번이 밀려서다. 이 사례들은 최근 1주일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벌어졌다. 이 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A 씨는 1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게 의료 붕괴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의료 붕괴인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 응급환자 늘어나는데 갈 곳이 없다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부족이 응급실 대란으로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응급실에 입원한 환자들이 중환자실의 빈 병상을 구하지 못해 짧게는 사흘, 길게는 열흘 넘게 응급실에 대기하고 있다. 최근엔 서울 내 모든 응급실의 코로나19 환자들이 하루 종일 단 하나의 병상도 배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응급실 만원’ 상황은 집에서 병상 배정을 기다리거나 재택치료를 하던 중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환자들이 갈 곳이 없어지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서울의 한 감염병 전담병원 응급실은 13일 하루에만 호흡 곤란 등 위급환자 10여 명에게 ‘수용 불가’를 통보했다. 이 때문에 서울 환자가 전북 전주시의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는 일도 발생했다.
응급실 병상이 부족하다 보니 119구급대가 위급환자를 구급차에 태운 채 장시간 헤매는 경우도 허다하다.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특수 구급차는 통상 4시간 이상은 연속해서 음압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최근 환자 이송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자 도중에 구급차를 교대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끝내 빈 병상을 찾지 못하고 응급실에서 숨을 거두는 환자도 적지 않다. 서울 B병원 응급실에서는 지난달 말 46세 코로나19 환자가 치료 도중 숨을 거뒀다. 의료진이 직접 입관 뒤 장사시설로 보내려 했지만 ‘순서가 밀려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몇 안 되는 코로나19 장사시설이 포화상태가 된 것이다. 결국 이 환자의 시신은 사흘 후에야 응급실에서 옮겨졌다.
○ 의료단체 “일상 회복 멈추자” 긴급 제안
이달 초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전립샘비대증으로 며칠간 소변을 누지 못한 70대 환자가 찾아왔다. 의료진이 응급 처치를 했지만 호흡 곤란과 고열 증상이 생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로나19로 재택치료 중인 환자였다. 이 환자는 수차례 관할 보건소에 증상을 호소했지만 병상을 배정받지 못하자 자신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자가 격리 애플리케이션(앱)을 지우고 응급실을 찾았다. 결국 방호복 없이 환자를 살핀 의료진 6명은 자가 격리됐고,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응급실 의료진은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 수원시의 한 응급실에선 지난달 이후 의료진 16명 중 7명이 사직했다. 최석재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홍보이사는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좌절감과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응급실에 있는 코로나19 환자들을 빈 병상에 우선 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 각 시도 병상 배정반은 응급실 내 환자를 ‘입원 중 환자’로 분류해 배정 우선순위를 낮게 두고 있다.
보건의료 단체들은 현장 역량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중단을 정부에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일상 회복을 2주만 멈추고 민관이 힘을 합쳐 장기전에 대비하자”고 제안했다.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김미화 정치부장은 “간호사 한 명이 중환자 4명을 돌보고 있다. 물 한 잔 마시지도, 화장실 한 번 제대로 가지도 못한다”고 호소했다. 대한감염학회도 성명서를 내고 “진료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한계를 실감하고 있다. 심각한 인명 피해를 막으려면 강력한 거리 두기를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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