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에너지 스타트업 ‘트웰브’는 7월 5700만 달러(약 670억 원)의 투자를 받아 주목을 받았다. 2015년 캘리포니아에 설립된 이 회사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뽑아낸 뒤 전기분해장치에 물과 이산화탄소를 넣어 일산화탄소와 수소가 섞인 합성가스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합성가스는 항공기 등에 쓰이는 제트 엔진의 연료인 ‘e젯(e-Jet)’을 만드는 데 쓰인다.
산업에서 배출되거나 대기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신생 스타트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보드카와 신발, 음식과 같은 소비재는 물론 콘크리트 등 건축 자재까지 이산화탄소로 만들어낸다. 전 세계에서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350개가 넘고 올해에만 9월 말까지 5억5000만 달러(약 6500억 원)가 투자됐다.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가운데 탄소중립에서 신생 기업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제트 연료부터 식품까지 ‘다재다능’ 이산화탄소
트웰브가 만드는 합성가스를 활용한 제트 엔진 연료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를 따로 배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회사는 제트엔진 연료에 그치지 않고 합성가스를 활용한 자동차 인테리어 부품을 메르세데스벤츠와 함께 개발 중이다. 세제로 유명한 타이드(Tide)와는 세탁세제 성분을 연구하고 있다.
9월 공개된 프리미엄 러닝화 브랜드 ‘온(On)’은 신발 깔창 재질의 절반가량을 석유화학 제품이 아닌 이산화탄소로 만든다. 이를 위해 미국 소재 스타트업 ‘란자테크’와 협력한다고 11월 발표했다. 란자테크는 특허를 낸 발효공정 기술을 이용해 공장에서 포집한 일산화탄소를 에탄올로 만드는 기술을 확보했다. 공장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는 포집하지 않으면 이산화탄소로 전환된 뒤 배출된다. 에탄올로 합성고분자인 폴리에틸렌의 원료인 에틸렌을 만들어 이를 신발 깔창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2017년 설립된 미국 뉴욕 소재 스타트업 ‘에어 컴퍼니’는 트웰브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산화탄소와 물,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화학반응기를 이용해 에탄올을 만든 뒤 이를 보드카로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2012년 설립된 캐나다 스타트업 ‘카본큐어’는 콘크리트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주입된 이산화탄소는 굳지 않은 콘크리트와 반응해 석회석과 유사한 광물로 변환돼 콘크리트에 섞인다. 콘크리트에 포함되는 시멘트 함량을 약 5% 줄이고 강도도 높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이 회사는 빌 게이츠가 설립한 투자회사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산화탄소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기업도 나왔다. 핀란드 소재 ‘솔라푸즈’와 미국 소재 ‘에어 프로테인’, 네덜란드 소재 ‘딥 브랜치’ 같은 스타트업들이 주인공이다. 이산화탄소와 물, 재생에너지, 암모니아, 기타 영양소를 배합해 미생물이 섞인 생물반응기를 통해 아미노산이 포함된 단백질 분말을 만들어낸다. 솔라푸즈는 현재 유럽 규제 당국에 식품 승인을 신청했다.
○ 스타트업 기술, 이산화탄소 배출 10% 줄일수도
미국 미시간대 ‘글로벌 이산화탄소 이니셔티브’ 분석에 따르면 탄소를 활용하는 스타트업들의 등장으로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0%를 줄일 잠재력이 있다. 콘크리트나 골재 같은 건축 자재는 가장 큰 이산화탄소 수요처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대량 생산을 위한 규모를 키우고 기존 산업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과제도 제시된다. 이산화탄소로 만들어진 원료를 구매할 파트너를 찾고 기존 산업 공급망에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본큐어의 경우 현재 450개의 콘크리트 공장에 자사의 기술이 적용됐지만 이는 전 세계 10만 개가 넘는 콘크리트 공장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산화탄소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관건이다. 산업 분야에 적용되는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이 있지만 포집 양이 충분하지 않다. 대기에서 직접 포집하는 기술은 아직 불완전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리처드 영맨 클린테크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신생 스타트업의 기술 없이는 탄소중립을 구현하기 어렵다”며 “각국 정부의 전략적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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