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 조회가 논란이다. 국민의힘은 사찰로 규정짓고 김진욱 공수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물론 공수처는 사찰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 처장은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전기통신사업법 제84조 3항에 맞게 청구해 받은 것이라 법적 문제는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경찰과 검찰에 비하면 양호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 처장은 “검찰에서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 59만7000건, 경찰에서 한 것이 187만7000건이고 우리는 135건”이라고 말했다.
사건당 통신 조회, 경찰의 10.4배
경찰과 검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니 문제없다는 해명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석연치 않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총 범죄 발생 수는 158만7866건이며 검거 수는 128만9129건이다. 경찰 통신 조회 187만7000건을 총 범죄 건수로 나누면 범죄 건당 1.2건 정도다. 공수처는 지난해 11월까지 사건 24건을 입건했다. 김 처장이 인정한 통신 조회 135건을 사건 수에 대비해보면 사건당 통신 조회 수가 5.6건으로 경찰의 4.7배 수준에 이른다.
이뿐 아니다. 김 처장은 통신 조회 건수가 135건이라고 주장했지만, 각 언론사와 국민의힘이 파악해 발표한 것은 훨씬 많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배우자 김건희 씨,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89명, 외신을 비롯한 국내외 기자 170여 명, 심지어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통신 조회 대상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300명은 넘어선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사건당 통신 조회 건수는 12.5건으로, 경찰의 10.4배에 달한다.
통신 조회 양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대상이다. 대상을 보면 의도가 엿보인다. 통신 조회는 대부분 야당 정치인과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공수처는 왜 이들을 주요 통신 조회 대상으로 삼았을까. 예상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수사 중인 사건이 대부분 야당 정치인,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들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둘째, 수사 중인 사건과 상관없이 야당 정치인과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를 ‘사찰’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개연성이 높아 보이는가.
첫 번째 가설을 검증해보자. 공수처가 야당 정치인이나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와 관련된 사건 위주로 수사하는 것은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검찰개혁 일환으로 공수처 설치를 오랫동안 주장하던 이들의 논리는 이것이다. “정치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없다. 공수처를 만들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수처의 존재 이유는 ‘권력형 비리’ 수사다. 야당 정치인 또는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를 주요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격이다. 국민의힘이 우려했듯이 공수처가 야당 탄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수처가 설립 취지에 맞게 활동하고 있다면 통신 조회도 권력형 비리 가능성이 훨씬 높은 여당 정치인이나 친여 성향의 언론인 위주로 했어야 한다.
두 번째 가설을 살펴보자. 수사 중인 사건과 상관없이 야당 정치인이나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를 사찰했다고 치자. 이는 국민의힘이 지적하는 바이기도 하다. 김진욱 처장과 더불어민주당, 청와대 모두 동일한 해명을 반복하고 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사찰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박수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은 1월 4일 YTN ‘더뉴스’에 출연해 “합법적인 수사 기법으로 허용돼왔고 다른 기관은 훨씬 많이 한다. 이 문제를 사찰로 규정하는 건 정치의 계절에 (나온) 정치적 용어”라고 말했다.
통신 조회 대상 편중
박 수석은 공수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해명도 내놨다. 그는 “공수처 특성상 국회의원과 판검사,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수사하기 때문에 통신 내역을 보면 통화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나 판검사, 언론인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럴 법하지만 “왜 야당 정치인과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가 주요 대상인가”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청와대가 열심히 해명을 내놓는 점이 되레 수상하다. “공수처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구”라는 것이 청와대 공식 입장 아닌가. 공수처가 정치적 목적으로 통신 조회를 한 것이 아니라면 청와대가 굳이 해명할 이유가 없다.
야당 정치인과 기자들의 통신 내역을 이토록 들여다보고도 기소한 적이 없다는 점도 수상하다. 경찰은 187만7000건을 통신 조회한 결과 128만9129건을 검거했다. 통신 조회 1건이 검거 0.69건으로 이어졌다. 공수처는 통신 조회를 135건 했지만 자체적으로 구속 또는 기소한 사례가 없다. 공수처의 통신 조회가 수사와 무관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결과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전기통신사업법에 근거해 통신 조회를 했더라도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 없다면 명백한 위법이다. 공수처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과 관련해 통신 조회를 했는지는 앞으로 반드시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김 처장은 앞서 국회 법사위에서 통신 조회 사안에 대해 “원칙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다”면서도 “현재 수사 중인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한 “억울해서 수사 내용을 밝히고 싶지만 수사 도중에 밝히는 것은 피의사실 공표나 공무상 비밀누설이 될 수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이 역시 부적절한 행태다. 통신 조회에 이어 해명도 선택적으로 한 것이다. 김 처장이 자의로 전방위 통신 조회를 지시했을 만한 동기는 부족해 보인다. 배후가 있다면 누구인지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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