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관련된 각종 의혹으로 시작됐던 이 사건에 대한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동아일보 법조팀은 앞으로 매주 진행된 재판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에 대한 취재도 병행할 계획입니다.》
“재판을 통해서 모든 사실이 다 밝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0일 푸른색 수의 차림으로 법정에 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는 당당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양철한) 심리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 첫 공판에서 재판부는 유 전 직무대리와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 성남도시개발공사 투자사업팀장을 지낸 정민용 변호사 등 재판에 넘겨진 ‘대장동 5인방’에게 한 차례씩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라”며 직접 발언할 기회를 줬다.
김 씨, 남 변호사, 정 변호사는 모두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우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 회계사는 “혐의를 실질적으로 다 인정한다”며 “죄송하다”는 표현을 두 차례 했다. 유 전 직무대리는 이날 유일하게 짧은 사과도 하지 않았다.
●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은 대장동 5인방 “좌석배치 다시”
이날 오전 법정에는 불구속 피고인인 정 회계사와 정 변호사가 먼저 출석해 개정을 기다렸다. 오전 10시에 재판부가 입정하고 재판이 시작되면서 구속 수감 중인 유 전 직무대리와 김 씨, 남 변호사도 법정 경위와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푸른색 수의에 방역을 위한 비닐을 걸치고 페이스실드까지 착용한 채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들은 재판부 맞은 편 피고인석에 정장 차림으로 앉은 정 회계사의 옆에 나란히 착석했다.
좁은 법정에 사람들이 꽉 들어찬 가운데 정 회계사의 바로 오른편에 앉은 남 변호사는 어색한 듯 괜히 뒤편 방청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 전 직무대리도 방청석을 두리번거렸고, 김 씨는 꼿꼿한 자세로 재판부를 응시했다. 정 회계사는 수사 초기 검찰에 이들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자료인 녹취록 등을 제공하며 수사에 적극 협조해 구속을 피했다. 그런 이유로 이들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피고인과 변호인이 분리돼 있어서 재판 시작 전에 좌석 배치를 다시 해 주십시오.”
서먹한 분위기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좌석을 조정해달라는 유 전 직무대리 측 변호인의 요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이며 풀렸다. 피고인의 양 옆에 각자의 변호인 2명씩이 앉는 방식으로 자리를 바꿔 앉고서야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핵심’ 배임 혐의 설명에 집중된 검찰 모두진술
대장동 5인방에 대한 검찰 공소사실 중 핵심은 피고인 5명 모두에게 적용된 업무상 배임 혐의다.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위해 일해야 할 유 전 직무대리와 정 변호사가 김 씨, 남 변호사, 정 회계사와 공모해 성남도시개발공사에는 손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김 씨 등에게 막대한 이익을 몰아주기 위해 직무상 임무를 위배한 부정한 행위들을 했다는 것이다.
이날 검찰은 30분가량 진행된 모두진술에서 가장 먼저 당시 대장동 사업이 리스크가 없고 사실상 이익이 보장되는 사업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그 근거로 △성남시 인허가를 받는 데 위험부담이 없었던 점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수용 권한을 보유해 지주작업에도 위험부담이 없었던 점 △판교신도시 바로 아래에 위치해 이전부터 개발수요가 많았고 입지가 좋은 점 △서판교터널 개통이 예정돼 택지 공급 시점인 2017년 이미 지가상승이 객관적으로 예견된 점 등을 들었다.
검찰은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에 가까운 사업을 담당한 유 전 직무대리와 정 변호사가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손해가 될 걸 잘 알면서도 김 씨 등과 공모해 2015년 대장동 사업 공모지침서에 이른바 ‘7개 독소조항’을 반영했다고 보고 있다. △건설업자의 사업신청 자격 배제 △대표사의 신용등급 관련 최고 등급 평가기준을 AAA로 하는 심사기준 포함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추가 이익 분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 포함 △민간사업자가 택지를 직접 사용해 아파트 건축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근거 조항 포함 등 민간의 이익을 늘리기 위한 조항 7개를 정 회계사가 정 변호사에게 전달해 공모지침서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후 정 변호사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편파 심사’를 통해 성남의 뜰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게 한 뒤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 △택지 예상분양가를 평당 1500만 원 이상으로 판단하면서도 일부러 1400만 원으로 축소 △화천대유가 직접 시행한 대장동 5개 블록에서 나오는 분양이익 공유 원천 배제 등의 내용을 반영한 사업협약과 주주협약을 체결시켰다.
그 결과 택지 예상분양가를 평당 1500만 원으로 잡았을 경우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성남의 뜰 지분율(50%+1주)에 따라 배당받을 수 있었던 651억 5000만 원과 화천대유가 독점한 5개 블록 시행이익만큼의 손해(최소 1827억 원)를 이들이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입혔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2020년 이에 대한 대가로 김 씨가 유 전 직무대리에게 700억 원 지급을 약속하고 5억 원을 실제로 건넸고, 남 변호사가 정 변호사에게 35억 원을 줬다고 의심하고 있다.
● 변호인 “검찰 공소사실은 사후 확증편향” 맞서
뒤이어 진행된 피고인 측 모두진술에서 유 전 직무대리, 김 씨, 남 변호사와 정 변호사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특히 김 씨 측 변호인은 “민간사업자의 이익은 고위험을 감수한 투자의 결과이지 배임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검찰 공소사실 중 핵심이 되는 배임 혐의에 대해서 반박하는 프레젠테이션을 30여분 동안 진행했다.
구체적으로 김 씨 측은 △화천대유가 성남의 뜰 주주 중 최후순위로 이익을 배당받는 것이라 전혀 이익을 배당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던 점 △화천대유가 사업이 어그러질 경우 날리게 되는 초기사업비 350억 원을 투자한 점 △금융기관 대출 승인 리스크가 있었던 점 등을 들어 대장동 사업이 리스크가 있는 사업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김 씨 측은 검찰이 ‘7개 독소조항’이라고 이름 붙인 조항들은 당시 공공의 수익을 확정적으로 보장받으려 했던 성남시의 정책 방침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확정적 수익을 얻는 방향으로 사업이 설계됐을 뿐 공모지침서 작성과 사업협약 체결 등의 과정에서 민간에 이익을 몰아주는 ‘부당 행위’가 이뤄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또 성남시에 기부채납하기로 한 제1공단 공원 조성비 등을 포함하면 공공에 돌아가는 몫은 약 5600억 원 상당이라는 점도 짚었다.
김 씨 측 변호인은 “검찰 주장은 오늘을 기준으로 보면 결과적으로 (민간이) 더 큰 이익을 얻지 않았냐는 것인데 이것은 전형적인 사후 확증편향”이라며 “우리는 모두 지나간 일의 전문가다. (예를 들어) 어제 봤던 주식 오늘 보면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고 비꼬았다. 또 “평당 1400만 원과 1500만 원의 차이를 가지고 배임이라고 하는 것은 배임죄가 너무나 남용되는 것”이라면서 “공소사실 자체로 배임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이 사실상 대장동 개발사업 설계의 실무자로 보고 있는 정 회계사는 이날 유일하게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정 회계사 측 변호인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공판에도 성실히 임할 것”이라면서 “다만 일부 공동 피고인들이 마치 정 회계사가 대장동의 모든 일을 결과적으로 주도한 것처럼 진술한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향후 대장동 5인방 간 공방을 예고했다.
● 법정 밖에서 불거진 ‘이재명 방침’ 논란
“독소조항이라고 언급된 7개 조항은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안정적 사업을 위해서 지시한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날 김 씨 측 변호인의 모두진술 중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를 언급한 부분이 재판 직후 뜨거운 논란이 됐다. 사건의 핵심 피고인가 ‘윗선’으로 의심받은 이 후보를 직접 거론한 만큼 주목받지 않을 수 없는 발언이었다. 이에 이 후보 선대위 측은 즉각 입장을 내고 “해당 방침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사적 지시가 아닌 ‘성남시 공식 방침’”이라며 “‘독소조항 7개’는 민간 사업자에게 이익을 주는 조항이 아닌 지자체가 개발이익을 환수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발언은 당시 대장동 사업 설계는 공공의 확정적 이익을 확보하려 했던 성남시의 정책 방향에 따른 것이지 로비 등을 통한 ‘부당 행위’가 아니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김 씨 측 변호인도 이날 오후 입장을 내고 “변론 내용은 검찰이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는 7가지 사항은 공공의 이익과 안정적인 사업진행을 위해 성남시가 정한 기본 방침에 따라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 구체화한 것이라는 취지였을 뿐”이라고 부연했다.
법정 안팎의 공방이 열기를 더하는 가운데 재판부는 17일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의 2차 공판기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은 지난해 검찰 조사에서 “2015년 사업협약서 작성 과정에서 초과이익 환수 조항이 빠졌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팀 소속 직원 한모 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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