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연구는 계속돼야만 해요. 많은 사람들에게 사유의 시간을 안겨주니까요. 금전적 보상이 뒤따르지 않아도 제가 계속해서 연구하려는 이유입니다.”
생계를 위해 틈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낮으로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 연구를 한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윤보라 씨(41)는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문학 연구자로 살아가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윤 씨를 포함해 2000년대 학계에 발을 디딘 30, 40대 젊은 인문사회학 연구자 10명이 ‘우리는 왜 연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한 책 ‘연구자의 탄생’(돌베개·사진)을 21일 펴냈다. 인문학이 위기를 맞은 건 오래된 일이다. 인문대학과 사회과학대학이 통폐합되고, 대학에서 연구자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암울한 진단서가 날아오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계속 연구해보겠다”고 말한다.
이들은 독립연구소를 만들어 학교 밖에서도 연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윤 씨는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을 밟고 있는 또래 연구자들과 2017년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를 만들었다. 연구소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월급은 한 푼도 없다. 오히려 세미나를 열기 위해 사비를 써야 한다. 윤 씨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선후배 연구자들과 만나 공부해보자는 취지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지난해 12월 연구소 동료 8명과 공동저자로 여성주의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교육공동체벗)라는 책을 펴냈다.
연세대 미디어문화연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천주희 씨(36)에게 연구는 곧 실천이다. 2016년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사이행성)라는 책을 통해 학자금대출 등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인 청년 빈곤 실태를 진단한 천 씨는 연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사회적 협동조합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에서 청년들의 재무 상담을 도운 것. 천 씨는 “내게 공부란 죽음과 불평등과 배제, 소외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꿔나가야 할지 삶과 생존을 위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매개”라고 했다. 천 씨가 석·박사 과정을 거치며 받은 학자금 대출금은 약 1억5000만 원. 하지만 천 씨는 “내일도 연구자이고 싶다”고 말한다.
책 제목처럼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연구자는 계속 탄생하고 있다. 젊은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원고를 엮은 돌베개 출판사는 “이들이 존재하기에 대학과 연구재단 밖으로 연구자의 외연이 확장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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