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극인]사도광산과 ‘아베의 주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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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2년 만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모국에 안긴 2018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이례적인 ‘침묵’으로 일관해 화제가 됐다. 고레에다 감독이 앞서 발간한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에 적은 내용이 심기를 거슬렀다. 그는 단일 가치관에 매몰된 일본 사회를 비판하면서 “시야가 좁고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일수록 내부에서밖에 통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 같은 단어를 중얼거리는 법”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나라’는 일본 우경화에 가속페달을 밟던 아베 총리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일본 정부가 당초 예상과 달리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끝내 강행하고 나선 배경에는 역시 아베 전 총리가 있었다. 그는 지난달 일본 정부가 한국의 반발을 의식해 보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페이스북에 ‘(한국이) 역사 전쟁을 걸어온 이상 피하면 안 된다’는 글을 올리며 뒤집기에 나섰다. 적반하장식 억지였지만 이 글을 신호탄으로 일본 집권 여당 내 우익 강경파들이 들고일어났고 국내외 눈치를 보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결국 방향을 틀었다.

▷세계인이 공유하는 세계문화유산은 ‘완전한 역사’를 수록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사도광산 등재 대상 기간에 조선인 강제노동 시기를 제외하는 꼼수를 부렸다. 아베 총리 시절 추진했던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 등재 때와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결국 뒤통수를 맞은 건 유네스코와 한국이었다. 등재 조건으로 강제노역의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기린다는 후속 조치를 약속받았는데 지켜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유네스코가 작년 7월 약속 이행을 권고했지만 일본은 귓등으로 흘렸다.

▷사도광산이 위치한 니가타현 등 한국의 동해 쪽에 면한 일본 자치단체는 오래전부터 ‘우라니혼(裏日本·뒷일본)’으로 불려왔다. 일본 경제가 오사카-도쿄 벨트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줄곧 소외돼 있었기 때문이다. 변변한 국제공항도 없고 고속도로도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았다. 사도광산도 1989년 관광자원화됐는데,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관광객을 더 유치하겠다는 자치단체의 욕심에 일본 정부의 체질화된 역사 왜곡이 기름을 부은 게 이번 사태의 발단이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2000명 남짓이 동원돼 혹사당한 비극의 현장이다. 하시마와 함께 국제문제화될수록 일제의 만행과 현재 일본이 보여주는 상식 이하의 양식을 비춰 주는 거울일 수밖에 없다. 일본 언론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일본이 아베 전 총리의 주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내부에서밖에 통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사도광산#아베#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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