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진우]원교근공 원칙 역행한 위험한 줄타기 외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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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우 정치부 차장
신진우 정치부 차장
원교근공(遠交近攻).

중국의 병법서에 나오는 계책 중 하나다. ‘먼 나라와는 친선을 맺고, 가까운 나라부터 공략하라.’ 알 만한 국제정치학자들이 “여전히 유효한 명언”이라고 평가하는, 현재진행형 네 글자다.

저명한 학자를 최근 사석에서 만났다. 문재인 정부 외교 정책을 평가해 달랬더니 돌아온 한 줄 평이 이랬다. “원교근공에 역주행한 정부.” 멀리 있지만 우방인 미국엔 소홀하고, 가깝지만 경계해야 할 중국엔 지나치게 고개 숙였다는 얘기다.

삼불(三不) 정책을 중국에 약속한 정부, 중국에 가서 6끼나 ‘혼밥’한 대통령. 이 정부의 대중(對中) 굴욕 외교 장면은 얼핏 떠올려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반대로 한미 간에는 연합훈련을 놓고 얼굴을 붉히고, 워킹그룹 해체로 충돌하는 등 갈등 장면이 더 익숙하다.

이 정부 인사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놀랍게도 거리가 있었다. 한 고위 당국자는 말 꺼내기 무섭게 “문재인 정부 대외정책 핵심 기조는 실용주의”라며 말을 잘랐다. “대미, 대중 관계가 그 기조 안에서 움직였는데 색안경을 끼고 보니 모든 게 반미, 친중으로 보이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쏘아붙였다.

더 놀라운 건 정부 출범 당시 설계한 주요 외교 기조가 실제 ‘실용주의’였다는 사실이다. 2017년 문 대통령이 “미국과의 외교를 중시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돈독하게 만들겠다”고 했을 때 언론은 중국에 주목했지만 사실 정부는 내심 미국에 더 방점을 찍었다고 한다. 앞선 노무현 정부가 대미 관계를 두고 ‘이념 논란’에 휩싸여 임기 내내 고생하는 걸 지켜본 이 정부 핵심 인사들이 시행착오를 막기 위해 실용주의 색을 입혔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자 다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왜 한미 관계 수식어로 ‘철통같은’보다 ‘불안한’이 더 기억에 선명할까.

그 나름 중립적으로 외교 현안을 지켜본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해석이 있다. 일단 정부의 큰 기조와 맞지 않는 세부 정책이 너무 많았단다. 큰 방향에 역행하는 미시 정책들이 툭툭 튀어나와 엇박자가 났다는 얘기다. 이는 ‘사람’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외교 아마추어 인사가 어설프게 4강 외교 정책을 주무른 기억만 떠올려도 답이 나온다. 컨트롤타워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다. 기조와 정책 간 미스매치가 생겨도 위에서 조정해주면 버틸 만한데 이를 정리할 역량조차 부족했단 얘기다.

미중 관계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미중 사이 줄타기를 하는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 방식은 유효기간이 다해간다. 그렇다고 2017년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미 FTA 재협상을 두고 “(미국이) 한국을 부당하게 대우하면 대륙세력(중국)으로 밀어붙인다”는 식의 어설픈 직진은 더 위험하다.

다음 정부가 디딜 외교 전장은 살얼음판이다. 기조와 정책의 부조화는 이제 국가적 재앙을 부를지 모른다. 차기 지도자는 이 두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갖췄으면 한다. 기조에 맞는 적임자를 가려내는 냉정한 안목과 부조화를 방관하지 않는 뜨거운 가슴을.

#원교근공 원칙#역행#줄타기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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