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스마트폰 끼고 사는 요즘 아이들, 컴퓨터 교육 현실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 지역-학교따라 환경 천차만별
‘컴퓨팅 사고력’ 강조하면서도… 교육 내실화로 격차 해소 절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에 익숙하다 보니 정작 컴퓨터를 작동하는 방법조차 잘 몰라요.”
전북 A중에서 1학년을 대상으로 정보 교과를 가르치는 유모 교사는 수업 첫 시간은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 그 대신 컴퓨터의 구성, 전원 켜는 법, 마우스와 자판 다루는 법 등 컴퓨터 사용에 필요한 기초를 알려준다.
○ 타이핑 미숙하고, 파일 저장 못 하는 아이들
유 교사가 컴퓨터의 기초부터 가르치는 이유는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요즘 학생들이 오히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를 주로 사용하고, 컴퓨터도 주로 게임 등에만 활용하기 때문에 컴퓨터로 정보를 검색하거나 컴퓨터에 파일을 저장하는 ‘컴퓨터 활용 능력’은 위축되고 있다.
20여 년간 중1 학생을 가르친 유 교사는 “학생들의 절반가량이 수업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기기인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을 다룰 줄 모른다”며 “일부 학생은 모니터를 데스크톱 본체로 알고 있거나, 컴퓨터 전원 끄는 법을 몰라 전원 버튼을 눌러 강제 종료를 시키기도 한다”고 전했다.
파이선, C언어 등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딩을 배우게 되는 고등학교에서는 컴퓨터 활용 능력의 차이가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 격차로 누적된다. 전남 지역에서 정보 과목을 가르치는 임모 교사는 “몇몇 아이는 고등학교에 올라올 때까지도 온라인에 파일을 올리고, 이름을 바꾸는 것조차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임 교사는 “고등학교에서는 ‘텍스트 코딩’을 하고 있어 타자를 치는 활동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러한 기본조차 어려운 학생들은 수업 진도를 버거워하는 반면 잘하는 학생들은 대학생 수준이라 격차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일부 학부모는 가정에서 선행학습처럼 컴퓨터 활용을 가르치거나 방과 후 수업으로 보충하고 있다. 경기 화성에서 초등 5학년을 키우는 학부모 이모 씨는 “초2 때부터 방과 후에 코딩 수업을 듣게 했다. 미리 시켜두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사는 곳, 다니는 학교 따라 ‘디지털 격차’ 벌어져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중학교에서는 정보 수업이 34시간 필수로 지정돼 있지만 고교에서는 선택사항이다. 정보 교과가 개설되지 않은 고교에 진학할 경우 학생이 원하더라도 수업을 받을 수 없다. 경기 용인에 거주하는 김모 군(18)은 “중학교 때 정보 수업을 듣고 개발자로 진로를 정했다”며 “고등학교에서도 학교에서 계속 정보 수업을 듣고 싶어서 정보 과목이 개설된 학교만 골라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정보 과목에 대한 학생의 관심이 높더라도 교사의 관심도에 따라 교육의 질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경북 B초교에서 근무하는 한 교사는 “초등은 전담교사가 없는 과목은 담임교사가 모두 가르치기 때문에 담임교사가 정보 교육에 관심이 없다면 컴퓨터실에 가지 않고 이론 수업으로만 17시간이 채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사에 따라 학생이 컴퓨터를 이용해 실제로 코딩을 이용해 볼 수도, 종이에 알고리즘 도식도를 그리는 수업만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 따라 학생들이 받는 디지털 기기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경남, 대구, 충북 등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학생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보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교에서는 자체 예산으로 블루투스 자판을 구매해 스마트 기기를 최대한 노트북과 비슷한 형태로 학생들에게 지급한다. 대구의 한 초교에서 근무 중인 이모 교사는 “자판을 써 본 친구들과 아닌 친구들의 차이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지역별 격차도 크다. 중고교 수 대비 중등 정보교사 비율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다. 중고교 수가 1105곳인 경기는 정보교사가 1421명이 있어 산술적으로 한 학교에 정보교사가 1명씩 배치돼 있다. 342곳이 있는 전북은 도내 정보교사가 110명뿐이다. 전북, 강원, 경북 등 정보교사 수가 적은 지역에서는 교사들이 정보교사가 없는 학교로 순회 수업을 나가고 있다. 정웅열 한국정보교사연합회장(경기 고양 백신중)은 “지난해에는 7, 8개 학교에 수업을 나간 교사도 있었다”고 전했다.
○ 소프트웨어 교육 강조에도 컴퓨터 활용 능력은 후퇴
학생들의 컴퓨터 활용 능력 퇴행 원인은 2000년 도입된 ‘정보통신기술(ICT) 교육 운영지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CT 교육 운영지침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국민 육성’을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ICT 이해가 아니라 활용 능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2008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정보 교과는 ICT 활용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기초 소양으로 중심이 옮겨갔다. 이때부터 초등 5, 6학년에서 관련 내용을 실과 수업을 활용해 17시간 내외로 학습하도록 했다. 중학교에서는 정보 교과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도 디지털 기초 소양 강화를 내세우면서 정보교육 확대 방안이 마련됐다. 초등에서는 실과 교과를 포함해 학교 자율시간을 활용해 정보 수업 시수를 34시간 이상 마련하도록 권장하고, 중학교에서는 68시간 이상 편성·운영을 권장했다.
다만 컴퓨터 활용 능력에 대한 교육 없이 ‘컴퓨팅 사고력’이 강조되면서 ‘모래 위의 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고력을 길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이 인터넷상의 정보를 소비하는 것에는 뛰어나지만 정보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활동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컴퓨터 사용 시간이 늘면서 중독 위험군이 함께 증가한 것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여성가족부가 초4, 중1, 고1 학생 127만298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지난해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 수는 총 31만2771명으로 나타났다. 2019년 27만8014명, 2020년 31만2034명에 이어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 정보교육 내실화 위해 교사 충원 등 필요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컴퓨터 활용 능력과 컴퓨팅 사고력을 동시에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교사 확충이 급선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교사가 여러 학교를 순회하면서 발생하는 교육의 질 저하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한일 한국컴퓨터교육학회 회장(제주대 교수)은 “현재 전국 12학급 이상 중고교는 5614개교지만 정보교사는 2754명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 대학에 남아 있는 컴퓨터교육학과는 8곳에 불과해 연간 최대 200명의 졸업생만 배출되고 있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정보교육 강화’가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시수 확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중 초등학교와 중학교 정보교육 강화 방안에 언급된 ‘학교 자율시간을 확보해 시수 확보를 권장한다’는 표현이 모호하고 무책임하다는 주장이다.
정 회장은 “소프트웨어 교육을 필수화해 모든 학생이 이를 배우는 건 긍정적”이라면서 “기본 컴퓨터 관련 소양 교육이 사라지고 소프트웨어 교육만을 받게 되면 따로 컴퓨터 활용 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간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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