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거세진 국내 ‘반중’(反中) 정서가 29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의 돌발 변수로 급부상했다.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한복을 두고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이란 비판 여론이 거센 가운데 쇼트트랙 경기 편파 판정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반중 감정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선 최대 캐스팅보터로 꼽히는 2030세대의 반감이 유독 강한 가운데 이들의 표심을 의식한 여야 대선주자들은 ‘공정’ 기치를 앞세워 중국을 향한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정치권 관계자는 “첫 대선 TV토론부터 사드(THAAD) 추가 배치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기조를 둘러싸고 후보들 간 공방이 이어졌던 만큼 대선까지 남은 한 달간 대중(對中) 정책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라고 했다.
● ‘친중’ 논란 속 與 더 강력 반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7일 밤 경기 종료 직후 페이스북에 “편파 판정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우리 선수들이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송영길 대표도 몇 분 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중국 체육대회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공정한 심판이 중요하다”고 가세했다. 이 후보는 8일엔 직접적으로 중국을 거론하며 비판 수위를 끌어올렸다. 페이스북에 “한국 선수단의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 제소 결정을 지지한다”고 적었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편파 판정에 대해서 중국당국이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고 경고했다.
이 후보가 유독 빠르고 강경하게 중국 규탄에 나선 건 현 정부의 ‘친중’ 이미지와 거리두기를 노렸다는 해석이다. 여권 관계자는 “현 정부가 중국에 유독 저자세 외교라는 지적을 받아 온 상황에서 편파 판정에 미온적 태도로 임했다가 야권의 친중 프레임이 덧씌워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더욱이 이 후보 역시 첫 TV토론 때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사드 추가 배치 공약을 비판하며 “왜 그걸 다시 설치해 중국의 반발을 불러와 경제를 망치려고 하는가”라고 언급했다가 “그 동안 발언을 보면 반미·친중 노선으로 보인다”(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라고 지적받는 등 ‘친중’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 이 후보는 개막식 한복 논란 때도 “(중국이) ‘대국으로서 과연 이래야 되느냐’는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가 “중국을 ‘대국’이라 칭한 여당 대선후보의 발언은 당혹스럽다”(국민의힘 김은혜 선대본부 공보단장)고 역공을 당했다.
그 동안 문 정부의 ‘친중 외교’를 줄곧 비판해 온 윤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선수들의 분노 좌절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아이들이 스포츠 룰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워간다. 올림픽 상황을 보고 크게 실망하지 않았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언급해 중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
국민의힘은 정부여당의 ‘굴종 외교’로 화살을 돌렸다. 국민의힘 이양수 선거대책본부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올림픽 정신을 무시한 수준을 넘어 중국이란 나라의 국격을 의심케 한 파렴치한 행태”라며 “지난 5년 중국에 기대고 구애해온 친중 정책의 대가가 무엇인지 성찰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페이스북에 “쇼트트랙 편파판정으로 우리 선수들의 금메달을 도둑맞았다”고 썼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올림픽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한중 수교 30주년에 정부 고심
정부는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은 올해 중국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이 전례 없이 악화되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다. 그동안 누적된 반중 감정 요인들에 올림픽을 둘러싼 반감이 더해진 만큼 이 같은 여론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그 동안 한중 갈등 때마다 현 정부가 지나치게 저자세로 대응해 도리어 국민 분노를 더 키웠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해 적절한 대응 수위를 놓고 고심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선 올림픽 개회식 한복 논란 관련해선 국내 여론이 사그라들지 않아 중국 측에 우려를 전했다”며 “사실상 비공식적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고 했다. 들끓는 반중 감정이 국내 사드 추가 배치 요구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비한 국민 설득 논리 등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중 정서가 대북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측면도 정부의 고민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의 유일한 우군이 중국인만큼 중국에 대한 악감정이 북한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며 “임기 말 남북 관계 개선을 노리는 정부로선 큰 걸림돌이 하나 더 생긴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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