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45일째, 200명 본사로 난입… 막던 직원들 부상… 정문 유리 깨져
노조위원장 “이재현 대화 응해야”… 회사 “비관용 원칙, 책임 물을 것”
1인당 50만원 투쟁채권 구매 독려, 거액 확보땐 파업 장기화 할 수도
택배노조(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가 파업 45일째인 10일 CJ대한통운 본사를 기습 점거해 농성에 돌입했다. 택배노조는 투쟁자금 마련을 위해 조합원 7000여 명을 대상으로 50만 원 채권 구매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파업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택배노조 조합원 200여 명은 이날 오전 11시 20분경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로 난입했다. 예고에 없던 기습 점거에 당황한 직원들이 이를 막으려 했지만 조합원들은 몸싸움을 벌이며 안으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정문 유리문이 파손됐고, CJ대한통운 직원 일부가 부상을 입었다. 로비를 점령한 노조원 60여 명은 철문을 내려 통행을 막고, 유리문을 가로로 눕혀 입구를 봉쇄했다. 노조원들은 건물 내 보안 게이트를 뜀틀 뛰듯 넘어서 다른 층으로도 올라갔다. 3층으로 올라가 ‘이재현(CJ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라’라는 현수막을 창문 밖에 걸기도 했다. 농성이 계속되면서 야간에도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CJ대한통운 측 관계자와 조합원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욕설과 고성이 터져 나왔다.
CJ대한통운은 택배근로자는 개별 대리점과 계약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CJ대한통운은 협상 주체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에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고자 물리력 행사라는 수단까지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점거로 누군가는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며 “45일 동안 거리에서 CJ대한통운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했겠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CJ대한통운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택배노조는) 난입 과정에서 회사 기물을 파손하고,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집단 폭력을 행사했다”며 “비관용 원칙에 따라 관련자 모두에 대한 형사적, 민사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성명을 내고 “파업 명분이 약해진 택배노조는 정부 및 정치권의 개입을 요구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물리력을 동원한 불법행위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택배노조가 본사 기습 점거를 통해 투쟁 동력을 되살리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진 위원장이 최근 조합원들에게 전하는 동영상에서 “2월 총반격 투쟁을 통해서 조합원의 분노를 보여주겠다”고 말한 것을 행동에 옮긴 것이다.
노조는 실제 조합원을 대상으로 1인당 50만 원의 채권 구입을 독려하면서 파업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 본보가 입수한 택배노조 선전물과 동영상 등에 따르면 진 위원장은 “두 달이 돼가는 파업으로 CJ 조합원들은 생계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투쟁 의지를 생계 문제로 인해 포기하지 않도록 해 달라. 조합원이 한 계좌 50만 원 채권 구매에 나서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고 밝혔다.
노조의 이른바 ‘투쟁채권’은 시위나 기자회견 등에 쓸 자금을 확보하는 한편으로 생계비가 부족해진 파업 참여 조합원을 돕기 위해 쓰던 방식이다. 2002년 보건의료노조 파업과 2011년 버스 파업, 2014년 케이블 방송 노조 파업 당시에도 투쟁채권을 발행했다. 2009년 민노총 산하 코레일 노조는 사측이 청구한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금 및 소송비용과 장기 투쟁 대비 자금 마련 등의 이유로 약 35억 원을 확보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택배노조는 월 3만 원씩 조합비를 걷고, 투쟁 때마다 추가로 돈을 더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장기적인 파업을 위해 채권을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택배노조 조합원 약 1900명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택배요금 인상분 분배 개선과 당일 배송 등의 조건을 담은 계약서 철회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에서 약속한 분류 도우미 등을 제대로 투입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에 현장 실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달 국토교통부는 “사회적 합의 이행 상황을 점검한 결과 CJ대한통운은 양호하게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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