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 野후보, 대선 앞 ‘초유의 충돌’
文 “근거없이 적폐로 몰아 강력분노… 사과 요구”
윤석열 “우리 文대통령도 성역없는 사정 늘 강조”
文, 원고 직접 작성해 발표 지시… 野 “명백한 선거개입” 반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를 향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전날 윤 후보가 집권 시 ‘현 정권 적폐수사’를 예고한 발언이 공개되자 청와대가 “매우 부적절하고 불쾌하다”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문 대통령이 직접 윤 후보를 향해 ‘강력한 분노’를 드러낸 것. 대선을 27일 앞두고 현직 대통령이 제1야당 유력 대선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가)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고 박수현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 긴급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즉각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라고 반발했다. 윤 후보는 “우리 문 대통령께서도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사정(司正)을 늘 강조해왔다”고 받아쳤다. 또 “윤석열의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반박했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 닷새를 앞두고 청와대와 제1야당의 정면충돌이라는 돌발 변수가 불거지면서 대선 구도가 출렁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윤 후보가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나. (적폐 청산 수사를) 해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불쾌감을 표출했고, 직접 이 같은 원고를 작성해 공개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모들도 윤 후보를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여야 후보를 막론하고 당선되면 대대적으로 정치보복하겠다고 공언한 후보는 처음 본다”며 “선거 전략 차원에서 발언한 것이라면 굉장히 저열한 전략이고 소신이라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직격했다.
윤 후보는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에 대해 “저 역시 권력형 비리는 늘 공정한 시스템에 의해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그런 면에선 우리 문 대통령님과 저는 똑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적폐 청산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은 유지하면서 정치보복이라는 비판은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야당 후보를 흠집 내려는 명백한 선거개입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 청와대가 발끈했다”며 “중국에는 한마디도 못 하면서 야당에만 극대노하는 선택적 분노”라고 했다.
대통령-野후보 충돌에 대선판 출렁
그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를 향한 비판은 물론이고 언급조차 자제해왔다. 정치적인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지만, 윤 후보에게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연이어 맡긴 건 문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10일 이례적으로 “강력한 분노”라는 표현을 써 가며 윤 후보를 향한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
반면 윤 후보는 이날 “우리 문 대통령께서도 성역 없는 수사를 늘 강조했다”고 응수했다. 논란이 된 ‘문재인 정부 적폐수사’ 발언이 정치보복이 아닌 수사의 원칙을 뜻한 것이라는 의미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닷새 앞두고 현직 대통령과 제1야당 후보의 충돌이라는 돌발 변수가 불거지면서 대선 구도도 출렁일 가능성이 커졌다.
○ 文 ‘강력 분노’에 친문 총결집
청와대는 이날 오전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을 열고 윤 후보를 향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한 문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5년 동안 검찰 중립과 독립을 지키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완전히 부정당한 모욕감을 느낀 것”이라고 했다.
여권 인사들은 “윤 후보의 발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결말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분노는 더 컸을 것”이라고 했다. 윤 후보의 발언은 불법 여부와 상관없이 문재인 정부를 범죄 집단으로 규정하고 집권 시 대대적인 강압 수사를 예고한 것이라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윤 후보를 향해 “선거 전략 차원에서 발언한 것이라면 굉장히 저열한 전략”이라며 “(윤 후보의) 소신이라고 한다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AP 등 세계 8대 통신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도 “과거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친문(친문재인) 진영도 대대적인 지원 사격에 나섰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윤 후보를 향해 “우리는 아직껏 만나보지 못한 ‘괴물 정권’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을 비롯한 친문 의원 20명도 이날 성명을 내고 “검찰 쿠데타를 선동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여권 관계자는 “설령 윤 후보가 집권하더라도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같은 상황을 결코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는 친문 진영의 강력한 의사 표현”이라며 “진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 尹 대신 당이 나서는 ‘투 트랙 전략’
윤 후보는 이날 오후 청와대의 브리핑 뒤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의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했다. 또 윤 후보는 ‘우리 문 대통령님’이라는 표현을 세 차례나 써가며 “대통령과 똑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 대신 청와대를 향한 공세는 당이 맡았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문재인 정부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 청와대가 발끈했다”고 했다.
이런 역할 분담은 선거 전략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가 나서 각을 세우고, 윤 후보는 “정치보복은 없다”는 점을 강조해 중도 유권자층을 공략하겠다는 것. 국민의힘 관계자는 “오전까지만 해도 윤 후보가 직접 강하게 맞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면서도 “윤 후보가 전면에 나설 경우 여권이 결집할 수 있고, 국민통합을 원하는 중도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대 윤석열’의 구도가 불리하지 않다는 분위기다. 정권 교체를 원하는 반문 표심을 자극해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올 수 있다는 것. 한 야권 인사는 “이번 국면으로 윤 후보의 지지율이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에 수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지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국면에서 윤 후보가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커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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