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베델 보카사는 역사상 악명 높은 독재자 가운데 한 명이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그는 국명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중앙아프리카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를 황제 보카사 1세라 칭했다. 1977년 대관식에는 정부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200만 달러(현 환율로 약 263억 원)가 투입됐다.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이들은 악어가 득실대는 연못에 빠뜨렸다. 그의 악마적 행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영국 런던대(UCL) 국제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보카사를 비롯한 권력자들 수백 명을 연구해 어떤 사람이나 시스템이 더 쉽게 권력을 쥐고 남용하는지를 분석했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이 권력을 손에 넣는 과정과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해 권력자가 악인이 되는 과정을 집중 추적했다.
악인들은 어떻게 권력을 얻었을까. 저자는 진화론에서 답을 찾는다. 선사시대에 더 많이 사냥하고, 부족 간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면 건장하고 잔혹한 이가 지도자가 되어야 했다. 진화는 지도자 선택의 프레임을 우리 뇌에 새겼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당대 남성들의 평균 키보다 컸다. 여성보다 남성에게, 키 작은 남성보다 키 큰 남성에게 권력이 쏠리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어떻게 보이는지에 더 집착한다. 그 결과 권력을 얻는 데 능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악한 리더’에게 더 끌린다. 권력자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이유도 스스로가 악인인 경우가 많아서라고 말한다. 타인의 환심을 사고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일수록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악한 권력자를 낳는 건 개인의 성품 이상으로 부패한 시스템에 원인이 있다. 외교관 면책특권이 주어진 미국 뉴욕시에서 각국 대사들이 불법주차를 일삼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뉴욕시장이 불법주차를 반복할 경우 번호판을 취소하는 ‘삼진 아웃제’를 시행하자 외교관들은 비로소 불법주차를 멈췄다. 나쁜 국가의 시스템은 권력자의 선택을 더 이기적이고 악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걸 보여준다.
부패한 이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통계학자 에이브러햄 월드의 ‘생존자 편향 오류’를 참고하라고 말한다. 월드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에서 전쟁 중 생존한 전투기를 보강하기보다 격추된 전투기를 분석해 이를 개선하는 전략을 짰다. 저자는 현재의 권력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격추된 전투기처럼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다시 말해 권력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지 않는 이를 지도자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권력을 탐하는 자가 가장 부패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직 안에서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해 청렴성 시험을 진행하거나, 감시의 초점을 하위직이 아닌 임원에 맞추는 방안도 제시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권력을 원치 않지만 리더십이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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