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유토피아[내가 만난 名문장/유현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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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주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유현주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 얻어야 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위험에 둘러싸여 아이, 어른, 노인 모두가 값진 나날을 보낼 것이니, … 그 순간을 향해 나는 말할 수 있으리, ‘머물러라, 너 그렇게 아름답구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중


독문학 교수라면 모두 괴테를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독일 현대문학 전공자로서 괴테라는 세기의 거장은 솔직히 어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대학 시절 수업에서 만났던 이 문장은 아직도 계속 떠오른다. 악마와 계약을 맺고 여러 가지 실험을 했던 파우스트의 이야기는 그가 사회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면서 최고점에 이른다. 한데 이 대목에서 나오는 유토피아의 모습이 이채롭다. 편안하고 나태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새로 간척한 땅에 세워져 매일 방파제 밖 거친 파도와 싸워 지켜내야 하는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왜 굳이 힘들게 노력해야 유지되는 유토피아를 그렸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곳곳에서 힘들게 싸워야 하는 것이 맞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도 이제는 힘들게 노력해야만 지탱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파우스트의 유토피아가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구절 안에는 또 다른 반전이 있다. 파우스트는 희망찬 건설 현장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지만 그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 소리는 파우스트 자신의 관을 짜는 망치 소리였다. 괴테는 당시 인류가 진입했던 현대의 초입에서, 발전 일변도 시대의 허상을 미리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고단하게 유지되는 이 유토피아 모델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평온한 하루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당신이야말로 일상이라는 소중한 유토피아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이다.

#괴테#유토피아#고단한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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