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희균]각자도생은 오래전 시작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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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공백이 자율과 협력이라는 정부
이미 각자 살아남아온 국민들을 보라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21세기, 명색이 G20(주요 20개국)이라는 나라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정부가 10일부터 85%에 이르는 일반 코로나19 재택치료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중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도는 말이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제는 국민들이 각자 잘 살아남아야 한다”고 절박하게 당부하고 있다.

정부는 발끈한다. 최종균 중앙사고수습본부 재택치료반장은 10일 “저희는 자율과 협력이라고 하는데 기자들은 방치, 각자도생이라고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1일 “재택 방치, 각자도생 같은 과격한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했다.

현실이 얼마나 ‘과격’한지 모르는 얘기다. 근래 코로나19 재택치료자 가운데 보건 당국의 안내를 제대로 받았다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모니터링은 물론 재택치료키트, 생필품 지원, 생활지원금도 속속 줄이고 있다. 온 가족이 확진된 한 지인은 어린 자녀가 연이틀 고열에 시달리는데 보건소 연락이 안 돼 확진자인 남편이 약을 사러 나갔다며 “나라가 범법자를 만든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각자도생이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부를 보면서 의아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 각자도생이 진행된 지 오래인 걸 모르나 싶어서다.

교육계를 예로 들어보자. 교육당국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Ⅱ에서 명백한 출제 오류를 범하고도 손을 놓고 있었다. 2년 동안 학교를 제대로 못 가 가뜩이나 힘들었던 수험생들은 자비를 들여 소송에 나섰다. 그야말로 ‘도생의 길’이다. 소송에 참여한 한 수험생은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을 어른들이 해주리라 믿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 때문에 왜 수험생이 법원을 오가며 힘들어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년 내내 방치되다시피 한 초중고교는 어떤가. 코로나19 1년 차에는 온라인 수업 먹통으로, 2년 차에는 수시로 바뀌는 등교 방침으로 학교마다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학교가 알아서 하란다. 교육부는 7일 ‘신규 확진자 비율 3%, 재학생 등교 중지 비율 15%일 경우 학교장이 등교 방식을 정하라’는 의미 없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숫자도 예시에 불과해서 모든 책임을 학교에 넘긴 셈이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이제 학교가 방역당국 대신 코로나도 검사하고 접촉자도 조사하고, 교육부 대신 등교 방침도 정하고 욕도 먹으면 되는 거냐”고 말했다.

이처럼 학생도 학교도 각자 살 길을 찾아 헤매던 지난 연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한 신문에 기고를 실었다. 글이 실린 날은 수능 오류 판결 후 닷새가 지나서야 교육부가 재발 방지책을 만들겠다고 해서 신문마다 비판 기사가 난 시점이었다. 그런데 교육부 장관의 글은 수능 복수정답 사태에 대한 사과도, 지난 2년간 교육 현장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해 송구하다는 메시지도, 내년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을 덜어보겠다는 다짐도 아니었다. ‘김근태가 그립다’는, 일기장에 쓰는 게 더 진정성 있을 내용이었다.

“교육부 장관이 출마 생각밖에 없다”는 교육계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으니 공공연히 쓸 수 있었을 글이다. ‘시의부적절’한 글에 마음을 베일 학생 학부모 교사보다는 지지 세력에게 손을 흔든 처사다. 각자도생은 어떻게 하는 건지 교육부 수장이 몸소 가르쳐 준 셈이다. 최근까지도 경기도지사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아온 그는 드디어 오늘 거취 표명을 할 예정이다. 청와대가 출마를 극구 말렸다니, 그나마 선거철 민심은 조금 신경 쓰나 싶을 뿐이다.

#방역공백#각자도생#오래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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