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명의 합창단이 함께 무대에 섰다. 보컬, 기타, 베이스, 첼로를 둘러싼 합창단이 “마녀가 나타났다!”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1월에 열린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받은 이랑의 퍼포먼스는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가 자주 노래하는 홍익대 앞 작은 공간보다 비교할 수 없게 큰 서울 고척스카이돔의 규모에 걸맞은 장엄한 무대 연출은 자본이 좋긴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무대에서 이랑이 부른 ‘늑대가 나타났다’는 그 자본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우화였다. 빵과 포도주를 만드는 일을 하지만 정작 포도주의 찌꺼기를 먹으며 살아가는 이들이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라고 노래한다. 그들은 곧 마녀가 되고, 폭도가 되고, 이단이 되고, 늑대가 된다. 이 무대가 더 빛났던 건 40여 명의 합창단이 수어로 소외될 수 있는 이들에게까지 노래의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이다.
이랑의 퍼포먼스는 늘 재기 넘쳤다. 2017년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신의 노래’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은 이랑은 월세 낼 돈이 필요하다며 즉석에서 트로피를 경매로 내놨다. 객석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어 트로피는 50만 원에 낙찰됐지만 사전에 현금 50만 원을 준비했던 계획된 퍼포먼스였다. 이 퍼포먼스에 대해 불쾌감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예술가의 현실을 반영한 탁월한 퍼포먼스였다고 생각한다.
이랑은 올해 서울가요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받았지만 발견이란 말이 민망하게 2012년부터 음반을 내고 활동해온 싱어송라이터다. 음악 활동에 앞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영화 연출을 했고, 만화를 그리고 책도 쓴다. 영화는 보지 못해 말할 수 없지만 그의 네 컷 만화와 서간집 문장엔 삶의 페이소스가 가득하다. 물론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그의 음악이다. 그는 마치 동요처럼 단순한 노래를 부를 때도 수많은 감정이 일게 한다. 이처럼 다양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도 당장 이달의 월세를 걱정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모두가 어려운 지금 시대에 예술이 대수냐는 생각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에겐 지금 더 예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타이틀곡 ‘늑대가 나타났다’의 파격에 밀리긴 했지만 이랑의 세 번째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잘 듣고 있어요’다. 그는 자신의 노래에 대해 “이게 어떤 쓰임이 있을지 의미가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어떤 순간에 어떤 시간에” 이 노래를 듣고 있는지 묻는다. 그 물음이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해서 그저 “잘 듣고 있어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잘 듣고 있어요”라는 별것 아닌 여섯 음절 안에 엄청난 위로의 무게가 담겨 있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예술이 있어 함께 분노하고 애도하고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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