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실패담 펴낸 심리학자
“주위 성공담에 마음 흔들려 불확실한 정보에 모은 돈 걸어
어느날 중독자가 된 자신 확인”
지난해 3월, 14년의 직장생활로 모은 저축금 수억 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삶은 지긋했고, 재테크로 돈을 버는 친구들 앞에서는 스스로 작아졌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아닌 이더리움 등 다른 가상화폐들을 뜻하는 알트코인에 투자했다. 위험도가 높은 만큼 수익률도 높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1주일 만에 수익률 20%를 달성했다. 환호했다. 하지만 2개월 후 투자금의 50% 이상을 잃었다. 직장인의 고충을 상담하는 심리학자이자 자살 예방교육 전문가인 그였지만 스스로 삶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18일 에세이 ‘심리학자가 투자실패로 한강 가기 직전 깨달은 손실로부터의 자유’(드림셀러·사진)를 펴내는 김형준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수석연구원(41) 이야기다.
그는 1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난한 삶은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가상화폐, 주식, 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벼락거지’가 된 느낌이었다”고 했다. “주식 계좌조차 없을 정도로 재테크에는 당초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죠. 나만 돈을 못 버는 것 같은 억울함도 들었고요.”
그가 가상화폐에 대해 알게 된 건 2017년. 당시 비트코인 열풍이 세계를 휩쓸었지만 그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파트 값이 치솟고 주식시장이 요동쳤다.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누구 집이 1년 새 3억 원이나 올랐다” “누가 비트코인으로 한 달 만에 1억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보다 투자를 고취하는 감탄사 ‘가즈아’가 마음에 더 다가왔다.
이윽고 제대로 된 공부 없이 지인들의 추천만 믿고 가상화폐를 사들였다. 출처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정보만 믿고 투자하기도 했다. 투자 실패 후 끙끙 앓고만 있던 그가 가상화폐 투자를 포기한 건 가족 앞에 선 뒤다. 그는 “아내에게 투자에 실패했다는 말을 하지 말까 고민하는 순간 내가 중독자가 되는 문턱에 서 있음을 직감했다”며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직업인으로서 수치심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가상화폐를 모두 팔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투자 실패를 호소하는 직장인들을 자주 상담한다. 그들에게 자신의 실패담을 들려주며 심리학자도 흔들린다고 위로를 건넨다. 부끄럽지만 자신의 실패담을 책으로 써낸 이유다.
“잃은 돈을 되찾는 게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에요. 뻔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마음을 잃지 않으면 일상을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강 가즈아’처럼 극단적 선택을 은유하는 신조어가 투자의 상징처럼 쓰이는 게 안타까워요. 정말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투자하는지 자문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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