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韓국보 혼천의도 “우리가 발명”… 도 넘은 “문화속국” 주장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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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14일 중국 베이징의 한 편의점에서 중국 여성이 한국에서 수입된 포장 김치를 고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 김치를 고유명사 ‘김치’로 부르지 않고 ‘파오차이’라고 한다. 둘은 완전히 다른 음식인데도 “김치는 파오차이의 한 종류”라는 왜곡된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14일 중국 베이징의 한 편의점에서 중국 여성이 한국에서 수입된 포장 김치를 고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 김치를 고유명사 ‘김치’로 부르지 않고 ‘파오차이’라고 한다. 둘은 완전히 다른 음식인데도 “김치는 파오차이의 한 종류”라는 왜곡된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11일 중국 베이징 도심 차오양먼역 근처의 찻집에서 조선족 전모 씨(58)를 만났다. 그에게 ‘한국에서는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조선족이 한복을 입고 등장한 것을 두고 비판 여론이 높다’고 하자 “조선족을 대표해 국제 행사에 나간 사람이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를 입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전형적인 중국 측 논리를 댔다.》







그런 그에게 ‘단순히 이번 한복 착용만이 아니라 수차례 되풀이됐던 중국의 한국 문화 도용과 억지 주장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현상’이라고 하자 “어쨌든 문제가 더 이상 커지면 안 된다”며 말문을 닫았다. 짧은 대화에서도 갈수록 멀어지는 양국 관계를 실감할 수 있었다.

韓 문화 폄훼 심각

올해는 중국이 “중국 북동부에 존재했던 여러 국가는 원래부터 중국에 속해 있었다”고 주장하는 역사 왜곡 시도, 즉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주창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중국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이 사업을 통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한국 고대 국가가 ‘중국의 지방정부’였다고 주장했다. 2007년 한 보고서에는 ‘백제와 신라도 중국사의 일부’라고 기술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말한 것은 이 왜곡된 역사관의 정점을 보여준다.

중국이 국가 주도로 치밀하게 진행한 동북공정을 통해 잘못된 역사관을 학습한 세대가 이른바 ‘중국판 MZ세대’로 불리는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자)’와 ‘링링허우(零零後·2000년대 출생자)’다.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생생히 목격한 이들은 중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중국 공산당의 모든 정책에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중화주의와 왜곡된 역사관이 결합한 탓에 이들은 ‘한국의 모든 문화는 중국에서 생겨났다’는 시각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최근 중국 온라인을 달궜던 “김치, 갓은 중국이 기원”이란 억지 주장 또한 주링허우와 링링허우가 여론을 주도하면서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이들이 웨이보, 더우인 등 소셜미디어에 잘못된 주장을 올리면 중국 매체들이 잇따라 보도하며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이다.

한글도 트집 잡아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아예 중국의 문화 속국으로 만들겠다는 ‘문화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주창하고 있다. 올림픽 개회식에서의 한복 논란 이후 중국 매체에서는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없는데도 한국 문화에 대한 왜곡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14일 인터넷 매체 텅쉰왕은 “한(漢)나라 때 만들어진 천체 관측기 혼천의가 한국의 1만 원권 지폐 뒷면에 그려져 있다. 한국인은 혼천의가 한국에서 발명된 기기인 줄 알고 있다”며 “한국 지폐에 혼천의가 등장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혼천의는 후한(後漢) 천문학자 장형(張衡)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 때까지는 이를 도입해 사용했으나 세종대왕 때부터 한국 실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제작했다. 조선 현종 때의 혼천의가 국보로 지정돼 있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1669년 다시 제작된 혼천의가 현재 1만 원권 뒷면에 있다. 즉, 한국 지폐에 있는 혼천의는 중국 혼천의와 무관한 한국 고유의 발명품이다. 한국이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천체 관측기를 발명했다’고 주장한 것도 아닌데 ‘중국 혼천의를 한국 지폐에 가져다 썼다’고 트집을 잡는 셈이다.

혼천의 논란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동북공정이 한창이던 2007년에도 중국 매체들은 1만 원권의 혼천의를 언급하며 “중국의 전통을 도둑질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당시 한국 측이 “한국 혼천의는 고유한 문화유산”이라고 반박하면서 논란은 곧 수그러들었다. 이후 15년간 잠잠했던 사안이 올림픽 개회식에서의 한복 논란이 벌어진 직후에 나타났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텅쉰왕은 태극기도 언급하며 태극 문양과 팔괘가 모두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은 자만심이 큰 나라”라며 “수천 년간 중국 문화의 세례를 받아왔는데도 모든 것을 한국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억지를 썼다.

15일 또 다른 인터넷 매체 왕이(網易)는 “한글은 한자가 없으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며 “한국인의 신분증에는 한글 이름 옆에 한자가 병기돼 있다. 한자가 없으면 이름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문화를 왜곡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앞서 중국 누리꾼과 유명 배우가 한복, 김치, 갓 등이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억지 주장을 펴면서 이른바 ‘한복 공정’ ‘김치 공정’ 등의 신조어가 탄생됐을 때와 똑같은 풍경이다.

중국이 한국 문화가 대부분 중국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과거 고구려 발해 등이 현재 중국 영토에 속해 있는 데다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에 맞설 만한 강대국으로 성장했다는 자신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격화하는 미중 패권 다툼이 중국 특유의 애국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장기 집권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 있는 시 주석 또한 외부의 적을 이용해 내부 불만을 무마하겠다는 속내가 뚜렷하다.

중국의 젊은 누리꾼들은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하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꼭 미국 편을 든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불만이 한국을 폄훼하는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포용’이 아니라 ‘지배’가 핵심인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또한 문화제국주의를 부추긴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신장이 세계 스키 발상지”

중국의 왜곡된 행태가 한국 문화 폄훼를 넘어 ‘세계 만물이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아전인수격 주장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영 중국중앙(CC)TV와 환추시보 등 관영 매체는 15일 “겨울올림픽 종목인 스키가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보도했다. 2005년 신장위구르자치구 돈데르브라크 동굴에서 발에 스키를 신은 듯한 사람들이 이동하는 동물 무리를 지켜보는 모양의 암각화가 발견됐고 이것이 스키의 기원이라는 주장이다. CCTV는 “이 그림이 약 1만2000년 전에 그려졌으며 서구에서 발견된 스키 유적보다 4000여 년이나 앞섰다”고 했다. 종이, 화약, 나침반 등과 함께 중국이 세계 최초로 만들었으며 인류 역사를 바꾼 발명품의 반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중국 매체들은 이 동굴이 신장위구르에 있다는 점도 집중 보도했다. 4일 올림픽 개회식 때 신장위구르 출신의 여성 크로스컨트리 선수 디니거얼 이라무장을 성화 점화자로 내세운 것 또한 스키가 중국에서 유래했고 신장위구르가 중국 영토임을 선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미국 등 서방이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을 이유로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것에 맞서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구 학자들은 이 벽화를 해당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스키를 탔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세계 최초라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2015년 중국과 호주 연구진의 공동 조사에서는 벽화가 중국이 주장하는 1만2000년 전이 아닌 4000∼5000년 전에 그려졌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꼬집었다. 인권 탄압의 주무대인 신장위구르를 스키 발상지라고 주장한 것 또한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중국#한국 국보#혼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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