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들은 쉽게 보기 힘든 희귀종을 보면 가만있질 못한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간 미국 식물학자 윌리엄 버거도 그랬다. 초원에서 흔치 않은 난초를 보자 호기심이 동해 줄기 하나를 떼어 와 길렀다. 온실에서 1년 내내 물을 충분히 주는 등 최고의 환경을 제공했다.
보통 건기와 우기 두 계절만 있는 열대 지역 식물들은 대체로 물이 충분한 우기에 꽃을 피운다. 이 난초에게는 5월이 그때였다. 이상한 건, 물을 항상 충분히 주는데도 매년 5월에만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난초다운 ‘지조’였을까? 물론 아니었다.
식물에게 물은 필수적이긴 하지만, 물이 충분하다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진 않는다. 우리 생각에는 ‘하찮은’ 식물이기에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식물도 언제 잎을 내고 꽃을 피워야 할지 세심하게 ‘결정’한다. 당연히 결정하는 기준도 있다. 온도와 빛, 그러니까 낮의 길이다.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경영자들이 그 나름의 경제지표를 기준으로 삼듯 이들은 낮의 길이를 잣대로 판단한다. 왜 물이 아니라 빛일까? 광합성이 더 중요해서?
모름지기 기준이란 변동성이 적어야 하는 법. 날씨처럼 ‘변덕’이 심해 속기 쉬우면 안 된다. 우기가 아닌데 마치 우기가 시작된 것처럼 며칠 동안 비가 오거나, 건기가 아닌데 건기처럼 비가 오지 않을 수 있는데 이걸 곧이곧대로 믿었다간 큰일 날 수 있다. 반면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면서 생기는 낮의 길이는 거의 변동이 없다. 기준으로 마침맞다.
놀라운 건, 식물들이 이 일을 결코 대충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 지역은 적도 근처라 일 년 내내 낮의 길이가 비슷하다. 특히 12월에서 6월까지는 채 한 시간도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버거가 캐 온 난초는 매년 5월을 정확하게 감지해 꽃을 피웠다. 뇌도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나름의 비결이 있다. 내부 생체시계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빈틈없이 파악한다.
조금 있으면 세상을 자신들의 색깔로 바꿀 우리 주변의 풀과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싹이 돋고 꽃이 피면 봄이 와서 그런 거구나 싶지만, 사실 이건 치열한 고민과 행동의 결과다. 잎을 내야 할 때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면 주변 경쟁자들에게 밀려 싹을 틔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틔운다 해도 시기가 늦으면 그늘에 가려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꽃이 늦으면 매개동물을 부르지 못해 후세를 남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서두를 수도 없는 게 그렇게 했다가 난데없는 꽃샘추위에 얼어 죽으면 어쩔 것인가. ‘제때’를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 자신을 세상에 드러낼 ‘때’를 알지 못하면 사는 게 힘들어지는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계절의 봄은 물리적으로 오지만 ‘나의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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