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으로 경찰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 대상이 된 피해자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가운데 경찰이 구속영장 신청 등으로 가해자 신병을 확보하려 해도 검찰이나 법원에서 막히는 일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 영장 기각으로 풀려나 보복 범죄
서울경찰청이 지난해 12월 13∼31일 스토킹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사회적 약자 대상 사건’ 4342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 23건 중 3건만 최종 발부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20건은 검찰이 반려하거나 법원이 기각했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해를 끼칠 소지가 있는 피의자를 구속하려 해도 검찰과 법원의 문턱을 넘기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14일 발생한 서울 구로구 40대 여성 살해사건 역시 전 남자친구였던 범인은 검찰이 구속영장을 반려하면서 풀려난 지 이틀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검찰은 영장 반려 사유에 관해 “일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경찰 관계자는 “구속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피의자의 과거 범죄까지 끌어모아 영장을 신청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경찰은 지난해 1월에도 전 연인을 협박·폭행한 피의자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연인을 감금했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과가 있음을 고려한 것. 하지만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 풀려난 A 씨는 이후 전 연인의 집을 무단침입해 보복성 성폭력을 저질렀다.
○ 유치장 가두는 요건 까다로워
서울경찰청의 ‘사회적 약자 대상 사건’ 조사에서는 경찰의 피의자 유치 신청도 8건 중 2건만 받아들여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스토킹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 아동학대처벌법 등에 따라 가해자를 최대 1개월 동안 경찰서 유치장에 가두겠다고 신청할 수 있다. 구속영장과 마찬가지로 경찰이 신청하면 검찰이 청구하고 법원이 유치 여부를 결정한다. 일선 경찰 사이에선 이 역시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유치장 유치도 구속영장과 비슷한 수준의 혐의 입증이 요구되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반면 접근금지조치의 경우 경찰이 신청한 42건이 모두 받아들여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피해자에게 접근해 짧은 시간에 범행을 저지를 경우 대응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 “스토킹 범죄 보는 시각 바꿔야”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검찰과 법원은 스토킹이 끔찍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 범죄라는 점을 더 전향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6일 참모회의에서 “스토킹 범죄 피해자 안전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찰과 경찰이 조속하게 강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대검찰청은 일선 검찰청에 “스토킹 등 강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재범 및 위해 우려가 있다면 초기부터 가해자 접근 차단 등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피해자 보호 방법과 범죄 예방 대책, 가해자 출소 후 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보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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