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시와 어떤 관계일까. 짐 자무시 감독은 영화 ‘패터슨’(2016년)에서 일상과 겹쳐지는 시의 존재 방식을 다룬다. 버스 기사인 주인공 패터슨은 미국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1883∼1963)의 시를 읽으며 매일 비밀 노트에 시를 쓴다. 청나라 장사전(蔣士銓·1725∼1785)은 당나라 한유(韓愈·768∼824)의 시를 읽고 다음 시를 썼다.
시인은 한유의 문집을 애독했고(‘讀昌黎集’), 시로 시를 논하는 논시시(論詩詩)를 많이 남겼다. 여기서도 한유 시에 대한 독후감 형식으로 자신의 시론(詩論)을 밝힌다. 시인은 한유의 시에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읽고 이것이 창작의 동인(動因)이라고 봤다.
한유는 일찍이 시가 마음이 화평함을 얻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고 말한 바 있다(‘送孟東野序’). 시인은 이를 바탕으로 옛날 시경의 국풍(國風)과 초사의 ‘이소(離騷)’ 이래 모든 시가 그렇다는 결론을 내린다. 시는 삶과 연결돼 있고 인생살이란 만족스러울 때보단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무렵 벼슬에서 물러나 금릉(金陵·현재 난징)에 은거하고 있었다.
영화는 동일성에 초점을 맞춰 시의 존재 방식을 부각시킨다. 제목 ‘패터슨’은 윌리엄스의 시집 제목인 동시에 미국 뉴저지의 지명이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패터슨은 시집 ‘패터슨’을 읽고 윌리엄스의 시론처럼 ‘관념이 아닌 사물로(No ideas But in Things)’ 시를 써나간다. 패터슨이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은 시가 된다.
장사전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는 대개 삶이 불만족스러울 때 쓴다. 영화는 가치 있는 시란 시인의 삶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는 윌리엄스의 시론을 내비친다. 시를 바라보는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시와 삶을 연결시킨 점에선 닮아 있다.
패터슨은 심혈을 기울여 써온 시 노트가 찢긴 다음 날 시집 ‘패터슨’을 펼쳐 든 일본 시인과 만난다. 윌리엄스의 자취를 찾아온 일본 시인은 패터슨에게 시인이냐고 묻는다. 패터슨시의 버스 기사일 뿐이라는 답에 일본 시인은 “아하! 아주 시적이군요”라고 말한다. 영화는 ‘패터슨’을 매개로 버스 기사와 시라는 언뜻 동떨어져 보이는 요소를 연결시킨다.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 양자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패터슨이 소중히 간직하던 시고(詩稿)가 훼손된 것처럼 인생살이 역시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시는 계속 쓰일 것이다. 삶이 곧 시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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