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오늘로 19일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주요 후보들의 공약 자료집 발간은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이젠 유권자들이 각 후보들이 쏟아낸 공약의 일관성과 타당성, 실현 가능성 등을 차분히 따져보며 옥석(玉石)을 가려야 할 시점이지만 기본 자료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각종 후보 리스크, 가족 리스크 등에 이어 이젠 ‘공약 리스크’란 말까지 추가돼야 할 판이다.
공약집 발간이 늦어지는 표면적인 이유는 유력 후보들이 가는 곳마다 새로운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어서다. 이재명 후보의 ‘아동수당 만 18세 이하로 확대’, 윤석열 후보의 ‘기초연금 지급액 10만 원 인상’ 등 신규 공약을 반영하느라 공약집의 수정 보완 작업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유세버스 사고 등 각자 사정은 있지만 안철수 후보나 심상정 후보 쪽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공약집 늦장 발간은 역대 대선 때마다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경우가 좀 다르다. 유력 후보들의 국정 비전이 오락가락하는 데다 특정 세대나 특정 이해 집단을 타깃으로 삼은 ‘티끌 모아 태산’ 식의 맞춤형 쪼개기 공약 경쟁이 과거 어느 때보다 넘쳐난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각종 ‘수당 신설’이나 ‘인상’ 공약 등이 남발되고 있다. 병사 월급 200만 원 등 상대 공약 베끼기도 횡행한다. 크고 작은 ‘즉석’ 공약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어 어떤 철학과 비전으로 한데 묶일 수 있다는 건지 어지럽고 헷갈릴 정도다.
이, 윤 후보는 퍼주기 공약 경쟁을 노골화하면서도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법엔 입을 다물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질의에 이 후보 측은 ‘300조 원 이상’이 들 것이라고 했지만 항목별 소요 비용은 아예 제시하지도 않았다. 윤 후보 측은 ‘266조 원’이 들 것이라며 주요 공약별 비용을 내놓긴 했지만 뭉뚱그린 추산에 그쳤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출을 어떻게 줄이고, 어떻게 추가 세입을 늘려 천문학적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새로운 퍼주기 공약 발굴에 급급할 때가 아니다. 큰 틀의 국정철학과 비전, 분야별 목표와 연도별 실행 계획, 항목별 소요 예산과 재원 조달 방안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공약집이라도 늦지 않게 내놓아야 유권자들도 어느 후보를 지지할지 꼼꼼히 비교 검증할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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