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빛이 자연에 닿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을 다수 남긴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태양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태양빛의 강렬함을 드러내고자 점묘법을 사용했다. 그가 햇빛의 변화에 따라 수십 번을 그렸다는 ‘씨 뿌리는 사람’에도 그 특징이 녹아 있다. 노란색과 파란색 점이 대비를 이루는 밀밭은 작열하는 태양이 밀밭 위에 일렁이는 느낌을 준다. 고흐가 즐겨 사용한 점묘법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답은 빛의 성질과 특성을 연구하는 광학에 있다. 프랑스 화학자 미셸 외젠 슈브뢸은 실험 중 인접한 색에 따라 원래 색이 다르게 보이는 ‘병치 혼합’을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화가들은 물감의 혼합이 아닌 망막에서의 혼합을 통해 색을 인식토록 하는 점묘법을 개발했다.
물리학자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저자는 빛의 정체를 규명하려고 노력한 과학자들과, 빛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한 미술가들의 역사를 추적한다. 예컨대 카메라의 등장이 극사실주의 화풍을 불러 일으켰고, 물리학 이론의 양대 축인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마르셀 뒤샹과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이야기를 소개한다.
광학의 창시자 아이작 뉴턴은 흰색으로 보이는 햇빛이 일곱 가지 색으로 나뉘고, 이를 합치면 다시 흰색이 되는 분광이론을 발견한다. 빛은 섞을수록 흰색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이를 계기로 비로소 화가들은 빛을 화폭에 제대로 담아낼 수 있게 된다. 매개체는 유화물감. 이 물감에는 기름이 섞여 있어 빛을 받으면 반짝거리고 매끄러운 느낌을 준다. 유화물감을 여러 겹 덧칠해도 마치 색유리를 겹친 것처럼 투명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뉴턴에서 시작한 광학과 미술의 상호작용은 양자역학으로까지 나아간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 수 없고 오로지 확률로만 기술할 수 있다. 이른바 ‘불확정성의 원리’다. 이는 선택에 따른 무한대의 가능성을 상정하는 철학 담론을 낳아 관찰자에 의해 완성되는 예술로 이어졌다. 자전거 바퀴, 남성용 소변기 등 기성품을 그대로 가져온 뒤샹의 작품이 그 예다. 뒤샹은 “관람자의 관점에서 해석될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열린 작품’들을 선보였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금지된 재현’은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하게 된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뒷모습을 보이고 서 있는데, 그의 앞에 놓인 거울도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남자가 자신의 정면을 직시하기 싫은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까. 마그리트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의심하고,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상상하는 과정을 의도했는지 모른다. 광학부터 상대성이론까지 물리학의 주요 개념이 작품에 녹아든 과정을 파헤치는 이 책을 읽으면 그림의 관람자를 넘어 화가의 관점을 경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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