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내걸었던 ‘이재명 정부’는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와 선을 긋겠다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외쳤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온갖 수식어로 포장을 해도 핵심은 차별화다. 문 정부의 오만과 불통, 부동산 대책을 위시한 민생 파탄의 불만을 돌파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조국의 강을 건너겠다고 했고, 부동산 정책 기조 전환에 나섰고, 거듭 큰절을 하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랬던 이 후보가 14일 “이재명 정부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라 사실상 폐기 선언에 가깝다. “문재인 정권의 후계자가 아니다. 새로운 이재명 정부를 만들겠다”(3일 방송3사 TV토론회)고 역설한 지 불과 11일 만이다. 필요하면 캠페인 전술이야 수시로 바꿀 수 있지만 근간을 뒤흔든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문 대통령은 10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직격했다. 문 정부의 ‘적폐’도 수사해야 한다는 윤 후보의 발언을 ‘정치보복’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규정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이 야당 후보를 정면 공격한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이 의도했든 안 했든 이 후보는 ‘윤석열=정치보복’ 프레임에 화답했다. 친문 세력과 정치적 제휴를 선택한 것이다.
이 후보로선 친이재명-친문 세력 간 팬 골을 메우는 일이 다급했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임기 말인데도 40% 안팎의 국정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친문 세력의 호응이 절실했고, 이를 디딤돌 삼아 30%대 박스권 지지율을 탈출하려고 했을 것이다.
대선 국면에서 현직 대통령과 여당 후보의 갈등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현재 권력과 이를 뛰어넘어야 하는 미래 권력의 지향점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갈등을 조정하고 풀어내는 정치력에서 희비가 갈렸다.
1992년 대선 때 김영삼(YS)은 노태우 민정계를 끌어안으면서 파국의 고비를 넘기고 당선됐다. 반면 1997년 대선에서 YS는 여당의 이회창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끝내 YS와 정면 대결로 치달은 이회창은 패배했다. 2007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정권의 인기가 바닥인 것도 있었지만 노무현-정동영의 극한 대치가 500만 표 차라는 역대급 패배의 원인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임기 말 인기가 없는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여당 후보의 차별화 전략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배제 전략은 하수(下手)다. 차별화를 하더라도 주류의 묵시적 동의를 이끌어내야만 갈라져 있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 후보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기만 했을 뿐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 후보는 이재명 정부가 아닌 통합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번 대선도 ‘통합정치 대 정치보복’ 구도라고 했다. 하지만 통합 정부는 구호만 있을 뿐 어떻게 채워 나가겠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현 정권 비리 수사에 반대하는 ‘문재인-이재명 연대’만 뚜렷해진 듯하다. 지지층을 향해 뭉치자는 분명한 메시지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친문 지지층이 결집할수록 1년 넘게 50%대를 유지하고 있는 정권심판 여론도 요동칠 것이다. 이 후보 측이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 대선 캠페인은 메시지 전쟁이다. 후보 캠프의 메시지는 일관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메시지가 혼선을 빚으면 표심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 후보 캠페인이 친문의 덫에 갇혀서 길을 잃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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