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첫 직장에 입사했다. 졸업장을 받지 못한 상태여서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한정적이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계약직으로 취업했다. 조건은 중요하지 않았다. 계약직이었지만 정직원과 다를 바 없이 열심히 일했다. 급여는 턱없이 적었고 정직원과의 차별도 있었으며 사내 복지도 열악했지만 재미있고 보람 있었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 내게 하루는 한 정규직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윤슬 씨는 조건 같은 건 상관없나 보지? 집이 여유 있어서 편하게 사나봐….”
지금은 여러 이유로 그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에 뛰어들어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 물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힘든 순간들이 있지만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있어서 버티며 이겨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얼마든지 직업을 바꿀 마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신기하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직업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 거 보니 인생 참 쉽게 산다!”
악조건과 차별 속에서 버티며 일하는 것이나, 혹은 위험을 감수하고 원하는 일에 뛰어드는 것이나, 누군가에게는 다 ‘편하고 쉽게 사는 삶’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내가 실제로 쉽게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조금은 억울하다.
‘꼰대’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다’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기성세대는 끈기를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며 젊은 세대에게 ‘존버(힘들게 버팀)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젊은 세대에서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족’들이 많이 생겨났다.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존버도 욜로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어중간하게 위치해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무조건 참고 버텨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앞뒤 안 가리고 현재의 행복만 추구하자는 주의도 아니다. 다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간’이다. 나는 늘 흘러가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고, 또 때로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힘든 시간을 버티는 것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그때그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울까 고민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편하고 쉽게 살아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는 늘 치열하게 고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선택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의 가벼운 평가에 휘둘리기에는 나의 아까운 시간이 지금도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나는 아마 존버와 욜로 사이에서 나만의 기준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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