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찾은 서울 영등포구 배달의민족 B마트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FC)는 도심 속의 거대한 냉장고 같았다. 1300채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 맞은편 지하상가에 위치한 물류창고에는 업소용 냉장고 수백 대가 빼곡했다. 냉장고에는 요거트, 어묵, 냉동육류 등 각종 상품이 진열돼 있었다. 10여 분 사이에 새로운 오토바이가 여섯 대 이상 도착해 필요한 상품을 챙긴 뒤 신속하게 떠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1인 가구 증가로 B마트처럼 30∼60분 안에 생필품을 문 앞까지 신속하게 배송해주는 퀵커머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배민과 쿠팡, 이마트, 롯데쇼핑 등 거대 유통업체들까지 이 시장에 참전하면서 이들 기업이 동네 슈퍼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규제가 필요하다는 반발의 목소리와 낡은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 코로나19로 급성장한 ‘퀵커머스’
퀵커머스는 도심 내 접근성 높은 소형 물류창고를 거점으로 생필품을 30분 안팎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배달의민족 ‘B마트’는 수도권, 대전 등 40여 곳, 쿠팡 ‘쿠팡이츠마트’는 강남3구와 강동구에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유통업계는 퀵커머스 시장이 지난해 1조2000억 원에서 2025년에는 최소 5조 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한다.
퀵커머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배민과 쿠팡 등 배달플랫폼 업체는 물론 이마트, GS리테일, 현대백화점, 롯데쇼핑, 홈플러스 등 유통 대기업들도 뛰어들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1인가구 중심으로 극도의 ‘편의 추구형’ 소비가 늘고 있어 퀵커머스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 것”이라며 “시장을 선점해놓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을 보는 동네 상점들의 불편한 시선이다. 판매 품목 자체가 대부분 겹치는 데다 대형 업체들이 편의성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치면 매출의 상당 부분을 뺏길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홍춘호 한국마트협회 이사는 “주문·결제만 온라인으로 할 뿐 유형 점포로 영업행위를 하므로 슈퍼마켓으로 정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중소마트들로 구성된 한국마트협회와 슈퍼마켓협동조합은 퀵커머스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올해 상반기(1∼6월) 내 동반성장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퀵커머스에 규제를 하는 방안은 현 여당 의원들 주도로 상반기 중 발의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당장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 같은 규제를 두는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문턱을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새로운 트렌드” vs “파괴적 커머스”
유통업계는 퀵커머스를 새로운 수요에서 파생된 거대한 소비 트렌드라고 보고 있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기존 동네 마트나 편의점 수요를 잠식한다기보다 비싼 배달료를 지불하고서라도 즉시 배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신규 수요를 창출하는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퀵커머스는 세계적으로도 급성장 중이다. 미국에선 뉴욕 기반의 고퍼프, 도어대시가 경쟁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글로보(스페인), 플링크(독일), 카주(프랑스) 등 퀵커머스 스타트업이 연이어 탄생 중이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2030년 약 6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퀵커머스 시장에서 규제가 논의되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퀵커머스라는 새로운 산업 출현을 앞두고 해묵은 규제 논쟁을 다시 벌이기보다는 중소상공인의 판로 기회를 보다 적극적으로 열어주는 지원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에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이 시행됐지만 실제 실효성 있는 상생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장)는 “온·오프라인 구분이 안 되는 ‘파괴적 커머스’ 형태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규제가 너무 선제적이어서도 안 된다”면서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새로운 커머스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비즈니스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게 진정한 상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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