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었다. 윤여정 선생님이 시상자로 무대에 나오는 장면이 있어서 반가웠다. 시상식 덕분에 봐야 할 영화 목록이 몇 개 늘었다. 기나긴 겨울이 끝날 듯하면서도 아직 약간 쌀쌀하고, 이제는 끝나야 할 것 같은 코로나도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는 듯하니 난 집에서 밀린 영화들을 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영화를 볼 때면 영광의 트로피를 타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단역 배우들이나 스크린 언저리로 보일 듯 말 듯 아른거리는 엑스트라에게도 눈이 많이 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내가 그 엑스트라 역할을 몇 번 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고로 자기가 스스로 경험하기 전엔 어떤 일에 신경을 쓰기 어렵고, 설령 신경을 쓰더라도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던가.
사실, 영화의 주연이나 조연을 맡는 유명 배우들이 관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는 하지만 영화 하나를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은 수백 명 정도는 된다. 그 수백 명 중 한 사람으로서 내가 출연한 영화의 엑스트라 임무가 어떤지 궁금해할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혹 내가 유명 배우들과 대화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신다면 여기 진짜 스토리가 있다. 내 역할은 대기업 임원 3, 깡패 7, 그리고 조선시대 말 영국 군인 14였다. 역할도 주로 침묵으로 심각한 표정 연기를 소화해 내야 하는 것이었다. 더 상세히 얘기하자면 외국인 엑스트라의 상황은 이렇다.
국적을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대중교통이 끊긴 야밤에 한 전세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서울 외곽으로 향한다. 새벽이 되기도 전에 어떤 공터에 다다른 버스 밖으로 다시 비슷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차례차례 내린다.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준비된 텐트에서 아침식사를 재빠르게 끝내고는 모두 분장실로 소집된다. 이 특정 영화에서 난 조선시대 말 영국 군인 역할을 맡았고, 장교복과 모자를 건네받았다.
운이 좋으면 유명 배우 곁에서 카메라에 잡힐 수 있다. 얼굴이 커다랗게 화면에 잡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냥 몸통의 어떤 부분만 찍힌다. 이것도 편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두고 볼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마네킹을 세워도 그 차이를 모를 정도로 그냥 먼 배경 언저리에서 공간을 채우는 역할이다.
엑스트라에겐 감독의 지시도 조금 불분명하다. “이쪽으로 걸어가세요” 혹은 “얘기하고 있는 척해주세요” 등이 전부다.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우리 모두는 심각해진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엑스트라는 액션을 크게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장면을 다른 앵글로 혹은 클로즈업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똑같은 액션을 매번 취해주려면 단순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깐씩 쉬는 시간에는 유명한 배우들과 대화를 하게 되는 행운이 오기도 한다. 스크린에서 보던 얼굴들이 친근하게 내 앞에서 보통 사람과 똑같이 대화를 하는,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화를 찍는 게 항상 쉽고 재미있는 일만은 아니다. 그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는 엄동설한인 1월에 하루 종일 외부에서 촬영이 이어졌다. 너무 추워서 핫팩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도 덜덜 떨리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었는데 이때 감독님의 무서운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 장면은 찜통 같은 여름 날씨가 배경입니다. 너무 더워서 땀이 나는 것 같은 연기를 해주세요!” 설상가상으로 내가 입은 장교 바지가 너무 커서 자꾸 내려오는 바람에 의상 담당자에게 꾸지람을 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저녁 무렵, 우여곡절 끝에 그날의 촬영이 끝나면 외국인 엑스트라들은 의상을 모두 반납하고 다시 전세버스에 오른다. 엑스트라가 영화에서 주는 의미가 있다면, 이들이 없으면 영화가 좀처럼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비 어택으로 세계 종말을 맞은 듯한 휑한 배경이 연출될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엑스트라에게 신경을 쓸 여지가 없다. 없으면 안 되는데 있어도 집중하는 관객은 거의 없다. 우리 딸 아들도 내가 출연한 영화에서 날 알아보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한 엑스트라로서 내가 한류 영화산업의 발전에 아카데미상 못지않은 지대한 기여를 한 것 같아 충분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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