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50대 여성 A 씨는 딸의 휴대전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휴대전화 너머로 “엄마… 나 성폭행 당했어”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전화를 바꿔받은 남성은 A 씨에게 500만 원을 인출해서 지시하는 장소로 가라고 말했다. 딸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생각에 A 씨는 급하게 택시를 타고 이동해 해당 장소에 있는 남성에게 돈을 건네줬다.
이후 A 씨에게 돈을 더 요구하는 연락이 왔지만 그 과정에서 A 씨 남동생과 딸이 연락이 돼 딸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A 씨는 자신이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근 엄마나 딸 등 가족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현금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전에는 수사기관을 사칭하거나 대출 상담 전화를 빙자해 개인정보를 요구하던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신종 수법은 국제전화로 걸려오지만 수신자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로 발신인이 표시돼 쉽게 속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구된다.
일선 경찰서에도 A 씨와 비슷한 사례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경찰서에는 부인 휴대전화 번호로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와 부인이 납치됐다며 5000만 원을 요구하는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인은 집 근처에 있었고 납치를 당한 상태도 아니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신종 수법은 휴대전화 번호 뒷부분이 일치하면 실제 전화를 건 번호가 국제전화 등의 다른 번호라도 평소 저장해 놓은 명칭으로 화면에 나타나는 점을 악용해 범행을 저지른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사전에 범행 대상의 휴대전화에 악성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거나 컴퓨터를 해킹하는 방식으로 개인정보에 접근해 전화번호를 알아낸다.
이후 수신자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로 발신번호를 변작해, 국제전화식별번호(001) 뒤에 변작한 번호를 붙인다. 예를 들어 010-abcd-abcd라는 번호가 ‘엄마’로 저장돼 있으면, +001-82-0001-0010-abcd-abcd로 전화를 걸었을 때 휴대전화 화면에 엄마로 표시되는 휴대전화 시스템을 악용한 것이다. 해당 수법을 시스템 상에서 차단하기는 어려워, 경찰은 통신사 및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협조 요청을 해놓은 상황이다.
국수본은 “범죄조직들이 문자메시지를 정교하게 조작하는 만큼 문자메시지에 포함된 인터넷주소는 철저하게 확인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누르지 말아 달라”며 “피해를 막기 위해 이러한 수법이 있다는 것을 공유해주기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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