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모자수役 박소희 “내 꿈은 최고의 ‘자이니치 배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4일 14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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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윤여정) 둘째아들 모자수 역을 맡은 재일교포 3세 배우 박소희 씨. 박소희 씨 제공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윤여정) 둘째아들 모자수 역을 맡은 재일교포 3세 배우 박소희 씨. 박소희 씨 제공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 국립 가스미가오카 경기장. 후반 종료 8분을 남겨두고 2골을 몰아넣으며 역전승을 거둔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한일전 ‘도쿄 대첩’ 현장에 한 재일교포 대학생이 있었다. 재일교포 동료 100여명을 이끌고 관중석에서 응원단장을 자처하며 한복 차림에 태극기를 흔들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대학생은 25년이 지나 글로벌 흥행을 질주하는 드라마의 배우로 우뚝 섰다.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에서 선자(윤여정)의 둘째 아들 ‘모자수’ 역을 맡은 배우 박소희다.

일본 땅에서 식민지 출신이라고 차별 받으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재일교포의 삶을 그린 드라마 ‘파친코’에서 박소희는 출연 배우 중 유일한 ‘진짜 재일교포’다. 1975년 니가타현에서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나 도쿄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무명 배우로 시작해 올해로 데뷔 20년 차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딴 그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앞세워 글로벌 무대에 도전하고 있다. 할리우드에 있는 박소희와 13일 온라인 인터뷰를 가졌다.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윤여정) 둘째아들 모자수 역을 맡은 재일교포 3세 배우 박소희 씨. 박소희 씨 제공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윤여정) 둘째아들 모자수 역을 맡은 재일교포 3세 배우 박소희 씨. 박소희 씨 제공


―드라마 ‘파친코’ 인기가 대단하다.

△이런 기회를 잡게 돼 기쁘다. 재일교포 3세인 내가 재일교포의 삶을 그린 드라마에서 연기한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드라마의 유일한 ‘진짜 자이니치(재일의 일본어 발음. 일본에서 재일교포를 가리키는 말)’라는 자부심이 있다.

어린 시절 박소희가 할머니와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박 씨의 할머니는 드라마 '파친코'의 선자(윤여정)처럼 재일교포 1세다. 박소희 씨 제공
어린 시절 박소희가 할머니와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박 씨의 할머니는 드라마 '파친코'의 선자(윤여정)처럼 재일교포 1세다. 박소희 씨 제공



―어린 시절 재일교포의 삶은 어땠나.

△초등학교 시절, 자기소개를 하는 매 학년 첫 날이 두려웠다. 이름을 말하면 “박? 이상한 성이네”라고 놀릴까봐 떨렸다. 누구라도 놀리면 싸우겠다는 심정으로 학교를 다녔다. 주눅이 들 때마다 아버지가 “한국인으로 당당히 살아라. 그게 너에게도, 일본 사회에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복잡한 역사가 있고 한국에선 ‘반쪽바리’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한국은 내 나라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파친코는 실제로 재일교포들이 많이 하는 사업인데.

△일본에서 파친코는 국민 오락이지만 도박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음지의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더럽다고 안 하는 사업에 재일교포들은 살기 위해 뛰어들었다. (차별받는) 재일교포들은 일본인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했다. 가수, 배우, 운동선수처럼 인기를 먹고 살거나 변호사, 의사처럼 자격증을 갖고 하는 일에 재일교포들이 많다. 성공한 사람들 중 재일교포라는 걸 숨기는 이들이 많긴 하지만.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윤여정) 둘째아들 모자수 역을 맡은 재일교포 3세 배우 박소희 씨. 박소희 씨 제공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윤여정) 둘째아들 모자수 역을 맡은 재일교포 3세 배우 박소희 씨. 박소희 씨 제공


―드라마 속 어머니였던 윤여정과 호흡은.

△최고였다. 드라마 출연 배우들 중 윤여정 선생님만 나한테 질문을 많이 했다. 재일교포들은 어떻게 사는지, 일본어 대사는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를 물어본 현장의 유일한 배우였다. 윤여정 선생님의 대사를 들을 때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어설프게 하던 일본어가 생각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드라마 속 선자야말로 재일교포 마음 속에 있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자 향수 그 자체다.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 때문인지 일본에서는 드라마를 나쁘게 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우익들은 아무 말이나 떠드는 사람들이다. 보통의 일본인은 충분히 양식 있는 사람들이다. 드라마를 만든 애플도 이걸 알아야 한다. 한국, 미국에서는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일본에서는 전혀 광고를 하지 않고 있다. 양식 있는 일본인이라면 순수한 멜로드라마로 볼 것이다. 세계인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드라마를 많은 일본인들도 즐겼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꿈은.


△이제 재일교포가 목소리를 높일 때가 됐다. 소리를 쳐야 세상이 바뀌는 시대 아닌가. 당당한 재일교포 배우로서 스피크 업(speak up)하고 싶다. 자이니치라는 단어가 영어사전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져서 미래의 재일교포들이 동경하는 롤 모델이 되고 싶다. ‘저렇게 멋진 배우가 자이니치네. 자이니치라니 대단하네’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 개인적으로 개그맨 유재석 씨를 굉장히 존경하는데 유재석 씨 예능 프로그램에 꼭 한 번 출연하는 것도 꿈이다. 기사에 이 말을 꼭 써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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