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로봇은 병에 걸리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기간 동안 전 세계 노동 시장은 큰 파도를 만난 것처럼 출렁거렸다. 팬데믹 초기에는 가게와 사무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해고자가 급증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완전 고용에 가까울 정도로 실업률이 떨어졌다. 오히려 ‘대사직의 시대’(The Great Resignation)가 열리면서 구인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더 높은 임금을 찾거나, 삶의 쉼표를 찍기 위해 사표를 내는 젊은이들이 급증하면서다. 생사를 좌우하는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경험이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듯하다.
팬데믹 초기, 전 세계 회사들은 폐업의 위협에 시달렸는데 생존 방안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이 ‘자동화’였다. 병원과 슈퍼마켓에는 바닥 청소 겸 소독 로봇이 등장했다. 패스트푸드 체인 화이트캐슬은 요리 과정에서 음식과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햄버거 요리 로봇’을 도입했다. 로봇이 만족스러웠는지, 감자튀김 제조도 자동화시켰다. 영국의 한 전국 레스토랑 체인은 로봇식 주방 기술을 제공하는 신생 회사를 사버렸다. 미국의 일부 맥도날드 점포는 드라이브스루에서 고객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음성 시스템을 실험 중이다.
일본의 대형 유통체인 패밀리마트와 로손은 매장에 ‘모델T’(Model-T)라는 로봇을 배치했다. 자동차 업체 포드가 1920년대 조립 라인의 생산 방식을 개척하고 내놓은 자동차 ‘모델T’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키 2m가 조금 넘는 모델T 로봇은 사람과 유사하게 생겼다. 두 팔의 끝에 달린 세 개의 손가락은 병 음료 등 식품을 들어 선반에 옮긴다. 매장 직원은 사무실 안쪽에서 가상현실(VR) 헤드셋과 특수 장갑을 착용해 로봇을 조종한다. 로봇에 장착된 카메라, 마이크, 헤드폰으로 손님들과 소통도 할 수 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동안 동유럽 근로자가 떠나면서 농업용 로봇에 대한 영국 농장들의 관심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농가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스타트업 ‘스몰 로봇 컴퍼니’ 등이 개발한 로봇이다. 이는 화학 살충제 사용을 줄이면서 밭의 잡초를 죽이는 역할을 한다. 로봇에 달린 카메라들이 밭을 돌면서 식물들을 분석한다. 이후 잡초가 잠식하는 곳을 정확히 찾아내고, 전기 충격으로 잡초를 제거한다. 과일, 채소 수확 로봇도 등장했다. 로봇은 AI로 가장 잘 익은 과일을 식별하는데, 토마토처럼 손상되기 쉬운 대상도 정교하게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로봇은 테스트 단계를 밟고 있다.
코로나19가 막 퍼질 당시에는 로봇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직원과 손님 사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시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무증상이지만 확진된 직원의 활동으로 사무실이나 가게가 오랜 기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도 많았다.
● 자동화 확대, 로봇 구독까지 등장
그런데, 최근 팬데믹이 끝날 조짐에도 로봇에 대한 관심이 꺼지지 않고 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자동화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미국 첨단자동화협회에 따르면 2021년 미국의 로봇 주문은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협회는 “역대 최고치인 4만 대에 육박했다. 올해도 증가세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으로 공장과 창고 같은 영역에서 자동화 속도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했고, 블룸버그통신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창고 소매점, 건설현장까지 로봇이 녹아들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중소기업이나 작은 업체들이 값비싼 로봇을 들여올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등장한 ‘로봇 구독 서비스’ 덕분이다. 포르믹테크놀로지와 로벡스, 리오스 같은 기업들이 구독 모델로 로봇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로봇을 설치하고 유지·보수해주면서 고객에게 정액 요금을 받는다. 장비 운영과 관련해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지만, 정액 요금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한다. 대개 노동자 시급보다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말 미 조지아주(州)에 있는 플라스틱 제조사 ‘톰슨 플라스틱’ 사례를 소개했다. 톰슨은 소형 특수목적용 차량의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데, 부품을 열 성형 기계에서 꺼내 컨베이어벨트에 올리는 작업을 로봇이 담당한다. 이전에는 직원이 직접 부품을 꺼내 결함이 있는지를 파악했다. 톰슨은 89대의 사출성형 기계 중 27대에 로봇 장치를 설치했는데, 향후 더 확대할 계획이다.
스티브 다이어 톰슨 CEO는 “1대당 12만5000달러(약 1억5400만 원)에 달하는 로봇을 직접 구매할 여력은 안 되지만, 구독을 하면 인건비보다 덜 든다”고 했다. 그는 “로봇 1대당 시간당 10~12달러를 내는데, 과거 직원을 쓸 때는 부가급여를 포함해 시간당 15~18달러를 줬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자동화 구독 트렌드는 이제 막 시작됐다. 소프트웨어 구독 모델과 비슷한 성장세를 누린다면, 로봇이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고 전했다.
● 사라진 로봇포비아(Robotphobia)
미국 기업들은 과거 로봇 등 자동화기기를 도입하려고 할 때마다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 진보 정당이나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제조업에서 자동화 필요성이 시급해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최근 ‘제조업의 부활’을 내세우고,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제조를 자국 내에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갈등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급 병목 현상을 체감하면서 공급망 재편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블룸버그는 “팬데믹은 미국이 주요 기술과 부품을 해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며 “해양 물류비용은 팬데믹 이전 대비 4배 늘었고, 항구에서의 만성적인 물류적체는 1980년 이후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기업들은 생산과 제조를 다시 미국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리쇼어링’(공장 등 제조업의 본국 회귀)을 해도, 일 할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 내 1140만 개의 일자리가 공석이었다. 2년 전보다 470만 개나 늘었다. 구인난으로 로봇 도입 등 자동화가 급해진 것이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러한 분위기를 가속화한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화라는 세계 경제의 기존 틀을 바꿀 수 있다고 11일(현지 시간) 분석했다. WTO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제가 서로 다른 블록으로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방 제재로 각국이 러시아와 에너지나 원자재 무역을 끊으면서 기존 교역망이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다. WTO는 “주요 경제권이 상품 생산과 무역에서 더 높은 수준의 자급자족을 달성하려고 하면서 지정학적인 요인에 따라 세계 경제권이 디커플링(분리)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등 주요 국가가 자국 내에 제조업 능력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MZ세대(밀레니얼, Z세대) 직원들을 중심으로 로봇에 대한 분위기가 바뀐 것도 한 몫 했다. 블룸버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한 이 세대는 로봇 기술에 주눅 들지 않는다”며 “로봇을 경쟁상대로 보기 보단, 사람이 하기 싫은 하찮은 일을 로봇이 하는 게 맞다고 여긴다”고 했다.
● 빠르고, 강해진 공장 로봇들
일부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로봇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경쟁력으로 삼고 있다. 주로 글로벌 이커머스 회사들이다.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아마존은 현재 전 세계 유통센터에서 20만 대 이상의 로봇을 운영하고 있는데, 더 민첩한 로봇을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R&D)을 거듭하고 있다. 물류 이외의 배송 등에도 로봇 도입을 준비 중이다.
아마존은 과거 물류센터 직원들이 하루 20㎞ 넘게 걸어야 하는 근무환경이 문제가 되면서 로봇개발업체 키바시스템즈(현 아마존 로보틱스)를 7억7500만 달러(약 9500억 원)에 인수했다. 이후 무인운반로봇 ‘키바’를 센터에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키바는 축구장 14개 크기의 물류센터에서 2m 높이의 선반을 시속 4.8㎞ 속도로 쉴 새 없이 나른다. 배송하는 직원에게 물건을 전달하고, 다음 전달에 적합한 최적의 위치를 계산해 다시 움직인다. 거대한 팔 모양의 로봇 ‘로보스토’도 있다. 최대 6t을 들어 올리는 이 로봇은 3층 높이의 컨베이어벨트로 물건을 들어올리기를 반복한다. 아마존은 로봇 도입으로 물류창고의 효율성이 5배 이상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이커머스 업체 알리바바의 로봇 기술도 만만찮다. 지난해 11월 초 중국 최대 쇼핑 축제인 광군제 기간에 알리바바는 주문 받은 상품을 대략 10분 만에 발송했다. 약 100조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거래액이 터졌지만, 배송 지연은 거의 없었다. 알리바바가 이 같은 물류 효율을 기록한 배경에는 밤샘 작업에도 지칠 줄 모르는 로봇의 역할이 컸다.
현재 이커머스 업체들이 활용하거나 개발 중인 로봇으로는 ‘피킹 로봇’과 ‘패킹 로봇’, ‘딜리버리 로봇’, ‘자율주행 로봇’ 등이 있다. 피킹 로봇은 상품을 차량에 싣거나 내리는 상하차 작업과 분류, 검수 작업을 하고, 패킹 로봇은 상품 포장을 담당한다. 최근 기업들은 상품을 고객 집 앞에 운반하는 딜리버리 로봇과 자율주행 로봇 개발에 힘쓰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지금까지는 인간 수준의 시각적 인식과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적재 작업을 로봇이 수행할 수 없어서 대규모로 인력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확실히 바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 ‘유아기’ 넘긴 인간형 로봇
흔히 로봇이라고 하면 단순히 무거운 물건을 들고 나르는 ‘쇠뭉치’를 떠올리는데, 인간을 본뜬 로봇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로봇청소기처럼 기어 다니거나, 바퀴에만 의지해 이동하지 않는다. 팔, 다리에 관절을 장착한 로봇이 사람, 동물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족보행 로봇견 ‘스팟’(Spot)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보유하던 미국 로보틱스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2020년 인수했다. 스팟은 방탄소년단(BTS)과 함께 춤을 춰 관심을 모았는데, 건설 현장 등 안전과 관련된 분야에 주로 투입되고 있다. 스팟은 키 84㎝, 몸길이 110㎝로, 360도·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했다. 사족보행을 하는 강아지 형태라 키 큰 로봇이 가기 어려운 험지를 자유롭게 접근한다. 이러한 장점을 인정받아 미 뉴욕소방청(FDNY)이 스팟 2대를 구매했다고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구매 가격은 대당 7만5000달러(약 8300만 원)로 알려졌다.
미 소방당국은 기존에 미국 중장기 제조사 캐터필러의 로봇 ‘슈퍼드로이드’를 구입해서 실제 사고 현장에서 써왔는데, 계단이나 잔해에서 움직이지 못해 드론보다 활용도가 적었다. 바네사 깁슨 뉴욕 브롱크스 자치구 의장은 “1월 뉴욕 브롱크스 화재 현장에서 스팟이 있었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화재는 200명이 넘는 소방관이 투입됐지만 진압되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 사고로 19명이 사망하고 64명이 다쳤다.
사람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하는 로봇도 등장했다. 일본 소니는 사람의 자세와 동작을 흉내 내는 휴머노이드 로봇 ‘EVAL-03’을 지난달 18일 공개했다. 이 로봇은 카메라로 촬영한 인물의 자세와 동작을 즉각적으로 해석해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동작을 따라한다. 30㎝ 키의 EVAL-03은 26개 관절을 가지고 있다. 발바닥에는 무게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센서를 탑재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사람의 격렬한 움직임에도 사람 모양의 로봇이 빠르게 동작을 따라하는데, 이 과정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도 내년에 사람을 닮은 로봇 ‘옵티머스 버전1’의 생산 계획을 내놓았다. 이 로봇은 사람이 하기 위험하거나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을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 정교해지고, 똑똑해지고
영국 로봇 회사 엔지니어드아츠는 얼굴에 표정을 지으며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Ameca)를 지난해 말 공개했는데, 놀라고 웃는 표정이 사람과 매우 비슷해 섬뜩한 느낌까지 불러일으킨다. 2004년 개봉한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 로봇’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로봇 이야기를 소재로 다뤘다. 로봇 산업의 발전 속도만 놓고 보면, 아이 로봇의 현실화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듯하다. 인간과 유사한 로봇의 정교한 움직임, 똑똑한 두뇌의 인공지능(AI) 등이 갖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악셀 크리거 미 존스홉킨스대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의 ‘스마트 조직 자율로봇’(STAR)은 올해 초 인간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은 채 돼지의 장을 실로 꿰매 이어붙이는 수술을 성공시켰다. 로봇은 인공지능과 영상 시스템을 활용해 돼지 배에 구멍을 내 장문합 복강경 수술을 진행했다. 이는 실과 바늘로 장기의 두 부분을 연결하는 수술인데, 장을 연결하는 장문합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정확성이 요구된다. 수술 중 바늘로 잘못 찔러 장 누출이 발생하면 환자에게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일 수 있다. 로봇이 인간처럼 손을 떨지 않고 반복 동작을 무난히 할 것 같아서다. 문제는 따로 있다. 장기가 뼈처럼 단단하지 않고 물렁물렁하기 때문에 매 순간 판단이 필요하다. 크리거 교수는 “STAR는 최소한의 인간 개입으로 수술 계획을 짜고 조정해 실행까지 하는 최초의 로봇”이라며 “정밀한 수술까지 성공시켰다”고 밝혔다.
기존에도 수천 대의 의료 로봇들이 인공관절이나 치과용 임플란트, 뇌수술 등에 활용되고 있었는데, 생명이 걸린 아주 정교한 수술까지 성공시킬 정도로 고도화된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9년 38조 원 수준이던 로봇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24년 149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 로봇, 내 일자리 뺏을까?
유통 및 물류, 건설, 의료, 금융, 정보기술(IT) 등 로봇이 각 산업 곳곳을 파고들면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은 수년 째 이어져왔다.
NYT는 1969년 ‘로봇은 낮은 비용으로 더럽고 힘든 작업을 수행한다’는 기사로 로봇의 일자리 위협을 전했다. 1980년 ‘로봇이 당신의 일 뒤에 있다, 신기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2017년 말에는 ‘로봇이 우리 아이들의 직업을 빼앗을 것인가’라는 글을 게재했다.
NYT는 2017년 기사에서 “AI는 아이가 20대가 될 때까지 수많은 직업을 쓸모없게 만들 수 있다”며 “뉴욕의 방사선 전문의는 연 47만 달러(약 5억8000만 원)를 벌고 있는데, 인공지능이 능력이 향상되면서 직업이 안정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2017년 당시 AI는 사람이 하면 45분 걸리는 MRI(자기공명영상) 분석을 15초 만에 끝냈다.
NYT는 로봇이 인간 외과 의사를 넘어서는 사례가 나오고 있으며, 대량의 문서를 검토하는 변호사의 일도 대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AP통신 등 일부 언론사들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이미 기사를 작성하고 있어서 기자의 직업도 위태롭다고 했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2016년 인공지능 ‘켄쇼’를 도입하고 600명이 넘던 주식 매매 트레이더 중 598명을 해고했다. NYT는 “로봇이 월스트리트를 침공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개발한 대니얼 내들러 켄쇼테크놀로지 창업자는 “연봉 50만 달러(약 6억1300만원)의 애널리스트가 40시간에 걸쳐 해야 할 일을 켄쇼는 몇 분 안에 처리한다”고 했다.
로봇의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단순히 일자리 숫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직업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인공지능의 발달에도 흔들리지 않을 직업으로 미용사와 교정치료 전문가를 꼽았다. 가장 위험한 직업으로는 문서정리, 금속 및 플라스틱 모형제작자 등을 제시했다.
연구원은 생산이나 공정 관련 직업과 사무행정직이 자동화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봤다. 구체적으로는 문서정리, 도박장직원, 촬영감독, 수력발전소 기술자 등 인공지능이 쉽게 범주화할 수 있는 직업들이다.
반면, 예술이나 스포츠 분야와 사회·의료 관련 전문직 등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미용사, 사회 및 지역사회 서비스 관리자, 산부인과 의사, 결혼 및 가족 치료사, 소아과를 제외한 안과의사 등이 그 예다.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 중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자동화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의 한 호텔 체인은 2015년 최초의 로봇 호텔을 열어 기네스북에 등재됐는데, 평가가 좋지 못했다. 호텔의 로봇은 체크인을 해주고, 짐을 받아 보관하며, 칵테일까지 만들어줬다. 고객의 방 청소를 하는 것도, 로비에서 환대의 춤도 추는 것도 로봇이 담당했다.
각종 문제가 발생했다. 댄서들은 쉽게 넘어졌고, 짐을 나를 로봇은 계단을 오르지 못했다. 사람이 코를 고는 것을, 대화로 착각해 고객을 깨우기를 반복했다. 고객과 원활히 소통하고, 교감해야 하는 섬세한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기까지는 갈 길이 먼 듯하다. 결국 호텔은 243개의 로봇 중 절반 이상을 해고했다. 재취업은 못할 것 같다.
● “로봇과 자동화, 오히려 일자리 늘릴 수 있다”
당장 수년 내에 여러 직업이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과 달리 로봇의 직업 대체는 더뎌 보인다. 이 기사를 로봇이 아닌 기자가 작성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변호사도 아직 인기 직종 중 하나다.
최근 로봇의 일자리 위협이 과장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1월 말 기사에서 “전 세계가 인공지능 혁명의 한 가운데 있지만, 선진국의 고용률은 사상 최고로 상승했다. 로봇 사용이 많은 한국과 일본의 실업률도 낮았다”고 전했다. 2년 간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를 늘렸지만, 자동화로 실업률이 늘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도 했다. 공장 자동화로 반복 작업을 하는 직업이 줄고 있다는 사실도 찾지 못했다. 팬데믹으로 자동화가 늘었을 수 있지만, 이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2022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의 ‘인공지능 경제학’ 세션에서 “로봇 자동화가 일부 노동자를 대체해도 디자이너, 통합관리자 등은 여전히 필요하다”며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결합해 기계가 스스로 실수를 이해하고 수정하며 우선순위까지 정하는 ‘머신지능’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는 “고객서비스 업무를 인공지능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인공지능을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동화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필립 아기온 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동화가 오히려 고용을 증가시킨다”는 역발상을 제시했다. 자동화가 기업의 수익성을 높이고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이 채용을 더 늘리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선순환으로 회사는 새로운 비즈니스에 진출하거나, 더 노동 집약적인 제품과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증명하는 또 다른 연구가 있다. 아다치 다이스케 오르후스대 조교수 팀은 1978년부터 2017년 사이 일본 제조업 기업들을 들여다본 결과, 직원 1000명 당 로봇 1대가 늘어나면 회사의 고용이 2.2%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MIT 연구진도 핀란드 기업들에서 로봇 등 첨단 기술을 도입한 기업의 고용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마이클 웹 스탠포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초기 자동화가 클수록 고용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AI가 일련의 일을 대신하겠지만 모든 것을 대체한다는 근거는 없다”고 했다.
● 로봇보다 덜 똑똑하고, 더 비싼 사람 쓰기
로봇의 전면적인 일자리 침투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은 일정 영역에 자동화를 도입하고 있지만, 대규모 고용이 걸리면 사회적 저항에 부딪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마존은 많은 영역에서 자동화를 도입하고 있지만, 고용도 굉장히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들이 사회적 압박에 의해 필수 인력보다 사람을 더 뽑는 비(非)경영적 요소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마존은 최근 영국 북부 지역의 달링턴 마을에 창고를 열었는데, 1300명의 정규직을 고용했다. 최근에는 500명을 추가로 뽑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당 지역은 최근 몇 년 간 수많은 지역 상점이 문을 닫은 것에 대해 아마존에 책임을 물었고, 아마존은 고용 등 투자로 해법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WSJ은 ”정부 관리들은 투자 압박이 아마존 경영진에 있었고, 회사의 투자로 전자상거래 업체(아마존)에 대한 태도가 누그러졌다“고 했다. 아마존은 현재 5만5000명 이상의 영국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도입이 필수가 된 것도 로봇의 전면 도입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로봇이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직장인 생활에 배우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분석도 있다. 자율주행 차량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발자들이 수많은 변수를 AI에 주입시키고 있지만, 끊임없이 발생하는 돌발 변수에 대처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마구간에서 탈출한 말이나, 비상 착륙하는 경비행기 등이 도로에 등장했을 때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지만(피하지만), 기계는 고군분투할 수 있다. 눈이 내려 차선 표시가 부분적으로 가렸을 때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갑작스런 상황이 발생해 자율주행차가 충돌을 피할 수 없을 때 임신부와 어린 아이 중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같은 윤리적 과제도 있다.
● “‘로(봇) 대리’도, ‘직원’도 협업 준비해야”
로봇의 개발 수준이 높아지고, 구독 서비스와 대량 생산 등으로 비용이 낮아지면서 기업에서 로봇과 AI의 역할이 계속 커질 것은 명확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로봇과 사람의 협업 체제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기업은 로봇과 직원의 협업을 대비한 교육 등을 준비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줄리 샤 MIT 컴퓨터과학 및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로봇은 정의된 작업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과 일하는 로봇은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며 “사람과 협력하고, 직원이 필요로 하는 것을 예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로봇이 ‘직원’처럼 일하려면, 사람과 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자연어 명령을 사용해 로봇을 학습시킬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현재 개발 중이다.
직원들의 디지털 기술 교육도 필요하다. 로봇을 가장 잘 활용하는 아마존은 실제로 직원들의 기술 교육 훈련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무거운 물건은 로봇이 옮기지만, 로봇을 조작하고, 고객한테 제품을 최종 전달하는 것은 사람이다. 이러한 연결 과정에서 효율성을 극대화 하려면 이를 다룰 수 있는 직원들의 역량 역시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아마존은 2025년까지 디지털 기술 교육훈련에 12억 달러(약 1조4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로봇은 아니지만, 독일 자동차 제조사 BMW도 임직원에게 AI 기술의 기초를 교육하고 있다. 이는 전반적인 추세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PwC가 지난해 100여 개 국가의 CEO 50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36%가 ”자동화와 기술 교육(디지털 투자)을 통해 직원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답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