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후 홀로 재택치료를 시작한 아버지는 연신 “괜찮다”고 했다. 기자는 감염 우려에 찾아갈 수 없어 답답하고 죄송했다. 그날 밤 전화 한 통이 왔다. 아버지의 재택치료 모니터링을 맡고 있는 간호사라고 했다. 신장에 무리가 가는 상황이 의심되니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보호자 동의를 받기 위한 전화였다. 아버지의 이상 징후를 비대면 진료를 진행한 의사가 발견한 것이다. 아버지는 “의사가 귀찮을 정도로 많은 걸 묻더라. 걱정할 것 같아 네겐 말 안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병원에 다녀온 뒤 안정을 찾았다. 모니터링 요원이 이후에도 수차례 전화로 환자 상태를 설명해줘 안심이 됐다. 형식적으로 이뤄질 것 같던 비대면 진료의 다른 면모를 체감한 시간이었다.
오미크론 대유행 여파로 국민 3명 중 1명(19일 0시 기준 약 1647만 명)이 코로나19를 경험했다. 재택치료가 대세가 되면서 의사와 비대면으로 접하거나, 모니터링 요원과 하루 수차례 자신의 상태를 묻고 답하는 원격상담도 늘고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코로나19 국내 유입 이후 2020년 2월부터 올해 4월 초까지 약 970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최근까지 포함하면 1000만 건을 넘겼을 것이다. ‘재택치료 중 비대면 진료’(527만 건) 비중이 높지만 재택치료자가 아닌 사람들도 443만 건이나 이용한 것도 놀랍다.
비대면 진료 시행 초기 혼란이 적지 않았지만 환자들의 만족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은평성모병원 조사에 따르면 의사들의 만족도는 52.7%에 불과했지만 환자들은 86%가 만족 의사를 보였다. 국민 70%가 ‘추후 원격진료를 이용할 의사가 있다’는 조사도 있다. 코로나 2년 동안 대세로 자리 잡은 각종 ‘비대면’ 문화처럼 원격진료도 삶의 일부로 녹아들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위력이 떨어지면서 비대면 진료가 중단될 위기다. 정부는 2020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서 ‘감염병 위기 심각 단계 이상에 한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현행법상 위기 단계가 하향 조정되면 비대면 진료는 다시 ‘불법’이 된다.
사실 비대면 진료는 ‘원격의료’라는 이름으로 20년 갈등의 세월을 보냈다. 첨단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산업계와 의료 공공성 저해를 이유로 반대하는 의료계의 갈등 속에 번번이 입법이 좌절됐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와 함께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의료계도 원천 반대보다는 “부작용 최소화”로 기류가 바뀌고 있다. 미래를 위해 한 발짝 나아갈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을 재유행 가능성이 높고 또 다른 감염병의 유입 가능성도 있다. 감염병 대응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인 ‘비대면 진료’를 더는 임시방편으로 운용하기 힘들다. 격리 치료가 필요한 감염병이 다시 유입됐는데 입법 미비로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국민들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새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이라도 ‘지각 입법’에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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